황성준 / 논설위원

오늘은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이다.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현재는 박물관)에 홀로코스트 생존자 300여 명이 모여 기념식을 한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하는 홀로코스트는 고대 유대교에서 산짐승을 불에 태워 신에게 받치는 ‘번제(燔祭)’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이에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인 ‘쇼아(Shoah)’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아우슈비츠가 인류에게 던진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으며, ‘반(反) 인도적 범죄’란 개념이 나오게 된 것도 홀로코스트 경험 탓이다. 그러나 쇼아는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르완다의 대학살, 북한의 수용소에서 반복됐다. “홀로코스트는 문명의 실패가 아니라, 적당한 조건만 갖춰지면 무한 반복될 수 있다”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홀로코스트 진실에 대한 도전도 있었다. 미국 유대인 정치학자 노먼 핀켈스타인은 ‘홀로코스트 산업’이란 저서를 통해, 홀로코스트가 초대형 돈벌이가 됐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으며, 그는 유대인 사회의 공적(公敵)이 됐다. 그러나 오히려 홀로코스트의 진실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사실은 분명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홀로코스트를 이용한 개인과 단체를 정화하는 계기는 됐다.

최근 탈북자 신동혁 씨의 증언 일부 번복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신 씨의 자서전 ‘14호 수용소 탈출’은 27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그런데 두 가지 오류가 있다고 인정했다. 어머니와 형을 고발했던 사건이 14호가 아닌 18호 수용소에 있었던 일이며, 당시 나이도 13세가 아닌 20세였다고 말을 바꿨다. 이 논란으로 탈북자 증언의 신빙성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오히려 탈북자의 증언이 검증될 수 있으며, 따라서 검증된 내용은 진짜로 믿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동안 탈북자의 이야기는 검증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신 씨의 책 내용을 문제 삼은 이들도 탈북자들이다. 14호 수용소에서는 살아나오기 힘들 뿐만 아니라, 18호 수용소에서 신 씨 가족을 본 탈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탈북자 3만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거짓과 과장은 설 곳을 잃고 있다. 구체적이고 풍부한 정보가 쏟아지고, 또 교차 검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홀로코스트 상업화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 것처럼 북한 인권 문제의 진실성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사소한 거짓말’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자칫 공신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과장에 관대한 우리와 달리, 서구에서는 거짓말을 범죄시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아우슈비츠는 약 3년 반 동안 운영됐다. 반면 북한 정치범 수용소는 1950년대 남로당 숙청 이후 60년간 유지됐다. 탈북자의 증언과 위성사진 판독 등을 종합한 결과, 북한 수용소 인원은 약 15만 명으로 추정된다. 진실 논쟁은 끝났다. 어떻게 해방시킬지를 논의할 때다.

sjhwang@munwh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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