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로 변모한 뒤에도 마을 사람들의 삶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음식점을 겸하는 민박이 두 곳 들어섰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여전히 농사를 짓고 있다. 9가구가 살고 있는데 주민은 통틀어 10명에 불과하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23가구가 살았다. 주민 중 네 분이 혼자 사는 할아버지다. 노인들이 많다 보니 겨울이면 사람 그림자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올해 환갑을 맞은 김찬수 씨는 자신이 마을의 막내라고 씁쓸하게 웃는다. 그가 어릴 적만 해도 이 마을은 섬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에 가려면 산과 강 사이에 뚫린 ‘토끼길’을 따라서 십오리를 걸어야 했다.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불면 등교는 아예 포기해야 했다. 외지 사람이 드나들 일도 없었다.
관광지가 되면서 번거로운 일도 생기고 여름에는 노래방기기까지 틀어놓아서 시끄럽지만, 주민들은 그게 사람 사는 일이려니 한다. 김 씨는 내성천도 옛날 같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4대강 사업으로 하류인 낙동강을 파내면서 모래가 떠내려가는 바람에 바닥이 무척 낮아졌다. 삼강주막은 회룡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주막의 관리 주체는 예천군이지만 운영은 삼강마을 주민들이 맡고 있다. 녹색농촌체험마을 회원들이 힘을 합쳐 음식도 만들어 팔고 공연도 준비하고 축제도 연다. 삼강주막에 가면 꼭 들러볼 곳이 있다. 바로 유옥연 할머니가 쓰던 부엌. 무척 좁아 보이는 부엌은 여느 시골살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솥이 두 개 걸려 있고, 바닥에 묻어놓은 술독 하나와 나무로 만든 찬장 하나. 그런데 자세히 보면 벽에 그어져 있는 숱한 눈금(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유 할머니의 외상장부다. 한글을 몰랐던 주모는 누가 막걸리를 먹고 외상을 하면 벽에 ‘누구, 얼마’라고 금을 그었다. 일반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아래위로 그어놓은 금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과 액수를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자신만 아는 암호가 있었던 것이다.
생전의 유 할머니를 자주 볼 수 있었다는 마을 주민 권모(76) 씨는, “키도 크고 전형적인 미인이었다”고 기억한다. 유 할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주막을 운영하면서 아들 둘, 딸 둘을 키웠다. 주막이 강 옆에 있는데도 샘이 없어서 먹을 물은 안동네에 가서 길어다 먹었다고 회고한다. 말년에 몸이 안 좋아지면서 아들이 있는 점촌으로 가 1년쯤 살다가 그곳에서 타계했다.
주인을 잃고 퇴락해 가던 주막은 2005년 12월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07년부터 예천군에서 복원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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