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도 참 유사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러지 말고 날씨도 따듯한데 주말에 제수씨와 골프나 가자”고 했습니다. 후배는 손사래를 저으며 싫다고 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먼저 말을 걸기 싫다고 합니다. 여태껏 먼저 사과하고 말을 먼저 걸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우리는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그리고 돈이 많을수록,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걸로 연구결과에 나와 있습니다. 듀크대 경제심리학자 댄 에리얼리는 “죄송합니다!” 한마디가 잘못된 일 하나를 상쇄시킨다고 했습니다. 또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하는 것보다 “죄송하지만”이라는 말을 붙였을 때가 성공률이 무려 5배나 높았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국내 커피숍에서 정중히 주문하면 커피값을 50%나 할인해주는 곳이 등장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지연 씨! 따듯한 걸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라고 주문하면 무려 50%나 깎아 주고 있습니다. 이 매뉴얼 주문 법에는 첫째 인사를 하고 둘째 이름을 불러주고 셋째 존댓말을 써주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주문하면서 “어이! 아메리카노 한 잔”이라고 참 퉁명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골프장에 가서 얼마나 권위적이고 무례했는지를 말입니다. 프런트 직원, 백 내려 주는 직원, 캐디에게 이름 대신 ‘언니!’‘어이!’심지어는 ‘야 인마!’라고 부르는 경우를 많이 봐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지영 씨!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라운드 잘 부탁합니다!”라고 한다면 라운드 내내 참 화기애애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일부 골퍼들은 위의 차이입니다.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어 권위와 체면이 안 선다고 생각합니다. 낯 간지럽다고 말을 합니다. 생각의 차이입니다.
작가 조지 와인버그는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무례하거나 퉁명스럽고, 나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만 공경한다면 그는 평생 이등시민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후배도 이 글을 읽고 “여보! 미안해요”라고 먼저 말을 건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함께 따듯한 1월의 골프장에 나가 소풍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I m sorry”가 그렇게 힘든 걸까요?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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