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셨습니다.”

안종관이 말했다.

“김 위원장도 진심을 털어놓으신 것입니다. 이런 기회가 자주 만들어져야 합니다.”

오후 9시 반,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마친 김동일은 바로 돌아갔으므로 머문 시간은 두 시간도 되지 않는다. 관사의 응접실에 둘러앉은 유병선과 안종관에게 서동수가 내용을 말해준 것이다. 유병선도 거들었다.

“아직 대선까지는 10개월 남았습니다. 결정하실 시간은 석 달쯤 있습니다.”

둘에게서 시선을 뗀 서동수가 말했다.

“대통령님을 만나야겠어. 위원장의 신뢰를 얻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야.”

“그 방법은 이미 위원장이 제시했지 않습니까?”

안종관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장관님이라고 말씀입니다.”

“위원장은 인간은 제각기 과업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지만, 난 아니오.”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위원장한테 차마 말은 못 했지만 지금까지 내 인생은 내가 만들었어. 내가 내키지 않는데 휩쓸려 들어가기 싫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과업인데도 말씀입니까?”

“말은 거창하지만 난 이순신 같은 위인이 아니오. 난 속물이오.”

서동수가 안종관을 노려보았다.

“그동안 나보다 능력이 있는 분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거요.”

그때 유병선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장관님께선 회사로 돌아오실 수가 있지 않습니까?”

“무슨 말이야?”

서동수가 눈썹을 좁히고 유병선을 보았다.

“회사로 돌아오다니?”

“대통령직을 마치시고 말씀입니다.”

정색한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멀리, 통 크게 보실 수가 있고 사심 없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장관님이 적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 돌아갈 곳이 없나?”

“장관님하고는 다르지요. 잘 생각해 보시지요.”

“생각은 무슨 생각.”

그때 안종관이 나섰다.

“어쨌든 위원장께도 그렇게 말씀 드렸으니 대통령과 상의를 해 보시지요.”

“역사고 민족이고 국가고 그런 거창한 말은 앞으로 내 연설문에서도 빼도록 해요. 그런 걸 의식하고 행동하는 건 마치 각본 읽고 연극을 하는 것 같으니까.”

소파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앞쪽의 벽을 보았다. 먼 곳을 보는 시선이었으므로 둘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 서동수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난 하나뿐인 내 딸한테 제대로 아버지 노릇도 못 해주었어.”

둘은 숨을 죽였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돈으로 보상을 해주었지만 내 딸은 할머니와 큰어머니가 키웠어. 이것이 인간 서동수의 현실이야.”

그러고는 서동수가 눈동자의 초점을 잡고 둘을 보았다.

“자, 오늘은 이만합시다.”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둘을 보았다.

“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두 분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둘이 방을 나갔을 때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들었다. 연락처 버튼을 누르자 번호와 이름이 주르르 떴다. 서동수의 시선이 서미혜에 머물렀다. 그런데 시선은 밑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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