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범죄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느끼지만, 전쟁이나 천재지변 때가 아니면 한 사회의 범죄 발생 수준은 일정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느 시대에나 엽기적인 범죄, 흉악한 범죄인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 어머니 살해, 인질 살해 같은 강력범죄가 여러 건 발생했지만, 우리나라의 범죄 문제가 이전보다 더 심각해졌다고 평가할 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엄벌, 그것도 과도한 엄벌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2010년 국회는 유기징역의 상한을 15년에서 30년, 가중 시 25년에서 50년으로 2배로 늘렸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유기징역 형기를 100년까지 늘리는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교도소에 수용된 사람들의 숫자도 적정선을 훨씬 넘어섰다.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20년 이상 구금생활을 하면 사회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무기수라도 재범 가능성이 없으면 20년 내외에 출소시킨다. 얼마 전까지는 우리나라도 같았지만, 최근의 엄벌주의(嚴罰主義)로 30년 넘게, 또는 30년 가까이 교도소에 수용돼 있는 사람이 현재 수십 명에 이른다.
정부는 규제 철폐를 국정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형법적 규제는 국가의 규제 중 가장 심각하다. 행정 규제가 암 덩어리라면 형사 규제는 말기 암 덩어리이다. 행정 규제를 철폐하면서 형벌을 강화하는 것은 건강식품과 발암물질을 함께 섭취하는 것이다. 징역 형기의 2배 가중은 행정 규제의 2배 강화보다 더 큰 부담을 국민에게 안기는 것이다. 교도소는 의식주·교육·의료·운동·취미생활 등 모든 것이 공짜다. 그 비용은 국민이 낸다. 수용자가 2배로 늘면 교도소·교도관·운영비용도 2배로 늘려야 하므로 엄벌주의는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
엄벌주의자들은 국민감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의 국민감정은 ‘중한 형벌이 범죄를 예방한다’는 소박한 사고에 따른 것이지만, 엄벌주의가 범죄 예방에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형벌을 정할 때 국민감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때의 국민감정은 이성적으로 정제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복수 감정에 따른 엄벌주의가 아니라, 범죄인의 사회복귀를 추구하는 선진적 범죄 대책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범죄 예방에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범죄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언컨대 우리나라의 성인 중 범죄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 우리의 형사 그물망은 너무 촘촘해서 누구든 걸리게 돼 있다. 강자는 그물을 찢고 나가고 약자는 그럴 수 없을 뿐이다. 세금 다 내고 사업하는 사람이 없고, 누구에 대해 험담을 했거나, 법인카드로 가족과 식사를 했거나, 돈을 주워 그냥 가졌다면 각각 조세포탈죄, 명예훼손죄, 배임죄, 점유이탈물횡령죄 등을 범한 것이다. 다시 말해, 흉악범들도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정신적·육체적·환경적으로 더 불우한 사람들에 불과하다.
이제는 관용주의의 관점에서 대사면(大赦免)도 고려해 봐야 할 시점이다. 과거 큰 가뭄이나 흉년 등 국가적 변고가 생기면 죄수들을 사면하곤 했다. 어려운 시절 민심은 흉흉했고 민심을 존중하면 엄벌주의를 따라야 했다. 그러나 억울하게 갇힌 죄수들의 원한 때문에 나라에 변고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는 이유로 대사면을 했다. 과거 사람들이라고 이를 그대로 믿었을 리는 없다. 대사면은 죄수들마저 포용함으로써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잇따른 실정(失政), 오랜 경제침체로 많은 국민이 분노와 좌절감에 빠져 있다. 과거 국가적 변고로 온 백성이 신음할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형편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엄벌의 유혹을 극복하고 통치권 차원에서의 대사면까지도 고려해 봐야 할 때다. 가장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패자부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본다면, 절망과 좌절에 빠진 국민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전제는, 어떤 경우에도 법치주의(法治主義)가 훼손되거나 후퇴하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패자부활의 기회를 주는 ‘따듯한 법’을 실현함으로써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는 효과를 거두면서, 동시에 법의 공정성과 엄정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묘안을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