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물리학자 애덤 프랭크는 이번 주 북리뷰에 소개한 책 ‘시간 연대기’에서 인간의 물리적 직관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스펠크의 연구를 근거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고체·중력·관성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배우지 않아도 사물의 물리적 움직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람과 사람, 생물과 무생물의 속성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리적 직관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 능력이야말로 인류가 도구를 제작하고 기술을 터득할 때 인지적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물리’란 직관이나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어려운 학문으로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물리적 직관력이 인류 문명을 진화시켰지만, 정작 사람들은 문명 속에서 이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어디 물리적 직관력뿐이겠습니까. 현대인들은 많은 원초적 감각들을 잃어버렸습니다. 별을 보는 감각, 맨발로 땅을 밟는 감각, 느리게 걷는 감각, 강렬한 맛과 쾌락에 밀린 무자극의 맛과 작은 감동에 대한 감각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사람들에게서 미묘한 대면 감각도 앗아갈지 모릅니다.

이번 주 북리뷰에 소개된 책들을 보며 이 생각들이 또 다른 가지로 뻗어갔습니다. 북리뷰 1면에는 커피를 철학적으로 사색한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이, 북리뷰 2면에는 여러 사람들의 공원에 대한 추억을 풀어낸 ‘도시의 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책들의 사유는 우리가 몰랐던 일상의 단면을 드러내 더 깊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커피는 마셔야 제맛이고, 공원은 직접 걸어야 합니다. 혹시 우리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책으로 공원을 대리 체험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얼마 전 재출간된 휴머니스트 사진작가 윌리 로니스(1910∼2009)의 따뜻한 사진 에세이집 ‘그날들’(이봄.사진)에는 그가 사진으로 포착한 평범한 사람들의 그날, 그 순간들이 들어 있습니다. 처음 만난 남녀가 음악에 끌려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사랑하는 연인은 남의 눈을 피해 키스하고, 엄마와 아이들은 풀밭 위에서 따뜻한 햇살을 즐깁니다. 로니스는 “사진을 찍는 그때 그 순간을 정의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것은 정확한 순간이다. 일부러 기다리면 나타나지 않거나 도망친다. 이런 순간의 정확성이 좋다. 일상의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책을 덮고, 머릿속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온 감각으로 그날들, 그 순간들을 느꼈으면 합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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