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기간 중 도핑검사관이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로부터 채취한 도핑시료를 분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12 런던올림픽 기간 중 도핑검사관이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로부터 채취한 도핑시료를 분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상시·경기중·특정종목 등 3가지 나눠 약물 금지… 적발땐 메달·포상·기록 몰수… 영구제명도 가능‘마린보이’ 박태환(26·인천시청)의 도핑테스트 양성반응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 최초의 수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태환은 빼어난 경기력은 물론 모범생을 연상케 하는 깔끔한 외모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왔기에 팬들이 느끼는 충격의 농도는 더욱 짙다. 박태환 도핑 파문이 ‘국민영웅의 몰락’에 비유되는 이유다. 박태환은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남자 자유형 400m)을 포함해 올림픽에서 금 1개와 은 3개를 획득했고, 2006 도하·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3관왕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도핑검사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되면서 선수생명이 중단되는 건 물론 지금까지 일궈낸 성과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몰렸다. 박태환은 “금지약물 성분이 든 주사제를 투여한 의사의 과실”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세계 스포츠계가 도핑에 관한 한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기에 ‘선처’를 기대하긴 어렵다. 월드스타를 무너뜨린 도핑과 금지약물, 그리고 박태환을 둘러싼 의혹 등을 짚어본다.

1 금지약물은 무엇이고 얼마나 되나?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반도핑 규정에 따라 매년 금지약물 리스트를 업데이트한다. 리스트에는 수백 가지 금지 성분이 나열돼 있고, ‘유사한 화학적 구조를 가진 물질’ ‘유사한 생물학적 효과를 내는 물질’ 등도 금지되기 때문에 금지 약물이 몇 가지라고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류하는 범주는 있다. WADA는 상시 금지 약물, 경기 중 복용 금지 약물, 특정 종목에서 금지하는 약물 등 크게 3가지로 나누고 있다. 상시 금지 약물에는 미인가 약품과 동화작용제, 펩티드 호르몬제 등이 포함된다. 박태환이 맞은 네비도(NEBIDO) 주사에 들어있는 테스토스테론은 동화작용제 중에서도 ‘남성호르몬 동화작용제’로 예시된 성분이다. 경기 중 복용 금지 약물은 암페타민 등 각성제, 헤로인이나 펜타닐 같은 마취제 및 진통제, 대마초 성분 등이다. 그밖에 혈압이나 심장박동 상승을 막는 베타 차단제는 양궁, 사격, 골프 등 특정 종목 금지약물로 지정돼 있다. 알코올은 양궁과 모터스포츠 등에서 금지약물로 지정돼 있다.

2 역대 도핑 관련 유명 사례는?

육상의 벤 존슨(캐나다), 사이클의 랜스 암스트롱(미국) 등이 도핑으로 몰락한 대표적인 스포츠 스타다. 존슨은 1988 서울올림픽 육상 남자 100m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근육강화제 복용이 들통나 이틀 만에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육상에서는 2000 시드니올림픽 여자육상 3관왕 매리언 존스(미국)도 약물 복용이 발각돼 메달을 모두 반납했고, 2013년과 지난해 타이슨 게이(미국)와 아사파 파월(자메이카)도 도핑에 적발됐다. 게이는 1년, 파월은 18개월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특히 2013년에는 ‘사이클 황제’로 불리던 암스트롱이 약물 복용을 인정했다. 이전까지 암스트롱은 고환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를 제패한 인간 승리의 상징이었지만, 약물 사용이 밝혀지면서 모든 수상 기록을 박탈당하고 영구제명됐다. 중국 수영스타 쑨양은 지난해 도핑 검사에서 혈관확장제인 트리메타지딘 성분이 나와 자격정지 3개월 징계를 받은 바 있다.

3 WADA는 어떤 조직인가

WADA는 반도핑 운동을 전 세계적인 규모로 추진하기 위해 세워진 국제 감시 기관이다. 1999년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최한 도핑에 관한 세계회의에서 채택된 ‘로잔 선언’에 근거해 같은 해 11월 10일에 설립됐다. 올림픽에서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됐던 벤 존슨의 사례, 일부 팀이 금지 약물을 소지하고 있다가 경찰에 적발되며 도핑 스캔들로 얼룩졌던 1998 투르 드 프랑스 등이 WADA 설립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꼽힌다. WADA는 각국에서 인정하는 검사기관에 위탁해 도핑검사를 실시한다. WADA의 반도핑 규정은 IOC와 종목별 국제연맹,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같은 국가별 반도핑기구 등 600개 이상의 스포츠기구에서 채택하고 있다. 본부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으며 조직은 재단 이사회, 집행위원회, 선수위원회, 보건·의학·연구 위원회, 금지약물 리스트 전문가 그룹, 유전자 도핑 전문가 그룹 등으로 구성돼 있다.

4 금지약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금지약물 대부분은 심혈관계 기능을 저하시켜 심근경색이나 당뇨 등을 유발한다. 피드백 계열도 손상돼 호르몬 계통에도 이상을 줘 월경 주기 혼란, 여성의 남성화, 고환 기능 감퇴 등의 원인이 된다. 정서적으로도 강한 공격성향을 보이거나 기억력 감퇴, 신경과민, 정서 불안 등을 일으킨다. 동화작용제의 경우에는 간의 효소를 억제해 간염이나 간암을 발생시키고, 펩티드 호르몬은 말단비대증이나 당뇨병의 원인이 된다. 이뇨제 등 각종 은폐제는 근육 경련과 탈수현상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딕 파운드 전 WADA 회장이 저술한 ‘인사이드 도프’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에서 최소 13명의 운동선수가 금지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5 도핑검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도핑검사는 일반적으로 경기 시작 12시간 이전부터 실시되는 경기기간 중 검사와 그 외에 사전 예고 없이 선수의 집이나 훈련장 등지를 방문해 이뤄지는 경기기간 외 검사가 있다. 경기기간 중 검사에선 ‘경기 중 금지약물’이, 경기기간 외 검사에선 ‘상시 금지약물’이 체내에 남아있으면 안 된다. 검사는 소변시료나 혈액시료를 채취해 이뤄지는데 절차는 비슷하다. 도핑검사자로 지정된 선수는 통지를 받은 뒤 도핑검사장으로 이동한다. 선수의 소변이나 혈액을 채취하는 과정은 도핑검사 동반인이 현장에 입회했을 때만 가능한데, 이때 선수는 상의는 몸통 중간, 소매는 팔꿈치 이상, 바지는 허벅지 중간까지 드러내 줘야 한다. 시료 채취 및 검사를 위한 용기는 최소 3개의 빈 용기 중에서 선수가 직접 선택한다. 채취과정이 모두 끝나면 시료는 봉인돼 WADA의 공인시험실로 보내져 검사를 거친다. 선수가 도핑검사를 받기 전까지 옷을 갈아입거나 인터뷰, 시상식 등에 참가한다면 도핑검사 동반인이 항상 붙어 실시간 감시를 한다.

6 도핑 적발시 어떤 처벌을 받나?

도핑 적발에 대한 처벌은 일반 경기에서의 반칙보다 훨씬 엄격하다. 일정 기간 자격 정지뿐만 아니라 해당 경기와 관련된 일체의 메달, 점수, 포상, 경기기록 등이 몰수되며 처벌받은 선수의 실명이 1년 이상 웹페이지에 게시돼 일반에 공개된다. 복용한 약물의 종류나 고의성, 횟수 등에 따라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진다. 에페드린 같은 흥분제 계열의 양성 판정을 받으면 1∼6개월의 선수자격 정지, 경기 출전 금지, 벌금 등이 가해진다. 스테로이드나 이뇨제 등의 경우엔 최소 2년간 선수 자격이 정지된다. 고의성이 있거나 마스킹(약물 복용 은폐제) 약물이 적발되면 가중처벌된다. 도핑 테스트를 거부하거나 방해해도 비슷한 수위의 제재가 내려진다. 횟수에도 엄격하다. 최초 적발 시엔 2∼4년 자격 정지지만 두 번째엔 그 기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나며 금지약물 시료 채취 불응과 부정 행위 때는 영구 자격 정지를 받을 수도 있다. 도핑에 적발된 선수는 청문회에서 소명할 기회를 갖게 되며 최종 제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스포츠중재재판소(CAS)나 각국 도핑방지위원회의 항소위원회에 항소할 수 있다.

7 국내의 도핑 적발 사례는?

국내에서도 도핑 약물이 적발된 사례는 적지 않다. 박태환에 앞서 수영 선수인 김지현은 감기약을 복용했다가 기관지 확장제인 클렌부테롤이 검출돼 지난해 5월 자격 정지 2년의 징계를 받았다. 동네 의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무심코 먹은 게 문제였다. 보디빌딩은 적발 사례가 가장 많은 종목 중의 하나다.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먹는 각종 보충제에 금지 성분이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06년 전국체전에서는 도핑 양성 판정으로 자격 정지 2년을 받은 선수가 7명이나 나왔다. KADA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그해 시행된 2830회의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선수는 모두 15명인데 이 중 보디빌딩 선수가 8명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배드민턴의 이용대와 김기정은 도핑 테스트를 회피했다는 의혹을 받아 자격 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다가 소명되면서 처벌을 면제받았다.

8 박태환도, 의사도 몰랐을까?

박태환에게 투여된 주사제 네비도는 독일의 세계적인 제약사 바이엘의 제품이다. 네비도는 남성호르몬 수치를 높여 갱년기 치료 등에 쓰이는 주사제이며, 근육강화제의 일종이자 대표적인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포함돼 있다. 박태환과 의사 김모 씨 양측 모두 네비도에 금지약물이 포함된 걸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네비도의 겉봉엔 ‘테스토스테론’이 표기돼 있다. 한글로 쓰인 제품사용설명서의 ‘일반적 주의’ 사항 첫 줄엔 ‘이 약을 사용함으로써 도핑 시험에서 양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금지약물에 포함돼 있다는 걸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특히 의사의 경우 환자에게 투여하는 주사제의 성분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김 씨는 테스토스테론이 금지약물인지 몰랐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사제의 성분을 알고 있으나 그 성분이 금지된 것인지는 몰랐다는 논리다.

9 적발 통보 후 80일간 무슨일이?

도핑 적발 사실을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통보받은 건 지난해 10월 말, 박태환 측이 해당 병원을 고소한 건 올 1월 20일이다. 두 달이 넘는 ‘시차’가 발생하기에 그 사이 ‘행적’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FINA에 재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12월 초 재조사마저 양성판정이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도핑 적발 사실을 12월 30일에야 대한체육회에 보고했다. 20여 일 동안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박태환은 전지훈련지를 둘러본다면서 1월 7일 미국으로 출국, 23일 돌아왔다. 도핑 적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등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한 ‘외유’로 추측할 수 있다. 1월 20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도핑 파문 사태는 마치 각본에라도 있는 듯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검찰은 23일 클리닉을 압수 수색했고 25일 박태환, 26일 의사를 소환해 조사했으며 박태환 측은 26일 보도자료로 도핑 적발 사실을 공개했다. 그리고 검찰은 27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10 박태환이 징계를 피할 가능성은?

박태환은 의사 과실을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징계를 피할 순 없다. 금지약물 양성반응의 면책사유는 단 하나다. 의사가 치료를 목적으로 금지약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그 금지약물을 대체할 만한 의약품이 없을 경우에만 치료면책으로 인정된다. 박태환은 치료면책에 해당되지 않는다. 도핑에 처음 적발되면 최대 4년의 자격정지 징계가 내려지지만 징계기간을 줄일 순 있다. FINA 규정 10조 5항에 ‘선수에게 중대한 책임이나 과실이 없는 경우 징계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 있다’로 명시돼 있어 2년으로 감경될 소지가 있다. 게다가 지난해 수영 국가대표 출신인 김지현이 자격 정지 2년의 징계를 받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김지현을 치료한 의사는 징계를 결정하는 청문회에서 "처방한 감기약에 금지약물이 있는지 몰랐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FINA엔 ‘같은 국가에서 같은 종목의 선수가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약물을 복용했을 경우 징계 수위는 같아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준호·김인구·김성훈·박준우 기자 jhlee@munhwa.com
이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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