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사회부 차장

1월 6일 새벽 서울 서초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강 모(48) 씨는 아내(44)와 큰딸(14), 작은딸(8)을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경북 문경의 한 길거리에서 체포돼 새해 벽두부터 큰 파문을 일으켰다. 강 씨는 아내가 마시는 와인에 수면제를 타고, 배가 아프다는 큰딸에게 약이라며 수면제를 먹게 해 잠들게 한 뒤 스카프로 세 사람을 차례로 목 졸라 죽였다. 유서를 쓴 것으로 봐, 자신이 죽으면 가족들도 제대로 살 수 없으리라 보고 아내와 두 딸을 죽이고 자살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시가 11억 원의 ‘강남 아파트’를 소유한 강 씨의 엽기적인 행각은 실직과 주식투자 실패에 따른 중산층의 좌절, 현대 가장(家長)의 유약함 등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서초동 세 모녀 살해사건’에는 가족을 가장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인식, 자식의 부모 살해(존속살인)보다 부모의 자식 살해(비속살인)에 관대한 문화·관념 등의 문제가 보다 근본적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

먼저 언론에서부터 존속(尊屬)살인은 패륜, 천륜 등의 용어를 써가며 격렬히 비난하지만 비속(卑屬)살인과 관련해선 ‘데리고 갔다’ ‘숨지게 했다’는 등 온건하고 완화된 표현을 쓴다. 법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직계존속을 살해하는 경우 가중처벌돼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그나마 1995년 형법 개정 전에는 존속살해죄에 대한 처벌이 사형과 무기징역뿐, 징역형은 아예 없었다. 반면 비속살해는 따로 규정이 없어 형법의 보통살인죄 조항(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따라 처벌된다. 그나마 비속살해는 ‘오죽하면 자식을 죽였겠느냐’는 등의 정상 참작이 돼 일반살인보다 오히려 형량이 낮춰지는 경우가 많다.

법학자들 사이에선 존속살해만 가중처벌하는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자식에게 가중처벌 조항을 두는 건 ‘자신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 신분’으로 인한 차별인 만큼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또 존속살해는 우발적인 사고거나 피해자에게 비난 가능성이 큰 유형이기 때문에 가해자인 비속을 가중처벌하는 것은 정의(正義) 관념에 비춰서도 옳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존속살해범죄의 실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의 정신이상에 의한 경우가 36.9%, 피해자의 가해자 또는 다른 가족구성원에 대한 학대에 의한 경우가 26.2%, 가정불화가 10.9%를 차지한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처럼 패륜성이 명백한 이욕(利慾)이 원인이 된 경우는 7.1%에 불과하다.

미국·영국·독일·러시아는 물론 같은 유교문화권인 중국·일본도 존속살해를 가중처벌하지 않는다. 우리도 봉건적·유교적 가족제도의 유산인 존속살해 가중처벌 조항을 폐지하든가, 아니면 프랑스·이탈리아·아르헨티나·대만처럼 존속뿐만 아니라 비속살해도 가중처벌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녀살해는 부모살해만큼, 어떤 측면에선 오히려 더 나쁘다고 볼 수 있다.

sdgim@munhwa.com
김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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