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야당 창당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야당’ 이 고유명사도 아니고, 여당이었던 시기도 있지만 그 60년 가운데 50년 가까이 보수정당이 집권했다는 점에서, 현 야당 인사들도 대개 그렇게 받아들인다. 정확히 말하면 1955년 9월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반대하는 여러 정파가 뭉쳐 ‘민주당’이라는 제1 야당을 만들었다. 그 뒤 우여곡절과 이합집산을 거쳐 오늘의 새정치민주연합에 이르고 있다.
당시 자유당 정권이 ‘사사오입’ 개헌을 자행하자 반대 의원들은 의원직 사퇴, 시위 등에 나섰다. 이에 조병옥 민국당 대표가 “우리가 국회를 떠나면 힘없는 국민은 누구한테 의지하나”라며 등원 투쟁을 제안했고, 그런 노선 위에서 민주당이 탄생했다. 1958년 보안법 파동 때에도 조 대표는 “죽어도 국회에서 소임을 다하고 죽자”며 국회를 지켰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민주당이 창당된 이후 무려 43년 만인 1998년 집권함으로써 야당의 중시조(中始祖)가 됐다.
새정치연합의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들이 앞다퉈 김대중·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야 정권 교체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이뤄냈다. 정체성도 뚜렷하며,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이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비주류의 비주류’로 불리며 지역 균형발전 등에 힘썼지만 대연정을 제의하는 등으로 혼란을 야기했다. 임기 말 실시된 대선에서는 사상 최대 표차로 패배해 정권을 넘겨야 했다. 이런 차이에 덧붙여 실제로 친노(親盧) 진영에서는 현 야당의 뿌리를 ‘원조 민주당’ 아닌 2003년 창당된 열린우리당에서 찾는 경향도 있다. 이처럼 이번 당대표 경선은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경쟁인 측면도 있다. 공교롭게도 한 후보는 김대중의 비서실장, 다른 후보는 노무현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지난 7년 동안 덩치만 컸지 정체성도, 집권 전략도 흐릿한 채 지리멸렬해 온 야당의 앞에는 청신호와 적신호가 교차한다. 박근혜정부의 지지도 급락이 노무현정부 못지않다는 사실은 통째 굴러 들어온 호박이다. 그러나 야당 리더십이 어디로 가든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여당 지지층은 박 대통령이 조금만 잘하면 금방 복구될 것이다. 선거 때엔 무조건 뭉친다. 야당이 자력으로 박 대통령 득표율인 51.6%를 돌파할 정도가 되지 않으면 집권은 어렵다. 이를 위해 현 야당이 본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당연히 맨 앞에 김대중 정신이 있다.
김대중 정신의 첫째 덕목은 덧셈의 정치다. 늘 세를 불리는 쪽으로 정치를 해왔다. 이를 위해 자신은 물론 측근들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했다. 재야 세력을 영입하고, 이기택의 ‘꼬마민주당’과 대등한 통합을 하고, DJP 연합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둘째, 원내 중심의 정치다. 김 대통령은 “수권 능력을 보여 주는 일은 의원들의 원내활동에서 시작된다”며 의원들을 독려하고 앞장섰다. 회의 출석까지 체크하며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일까지 챙겼다. 조병옥 시대부터의 유구한 전통인 셈이다. 셋째, 책임의 정치다. 1992년 대선 패배 뒤 과감히 정계 은퇴를 선택했다. 당권이라도 유지하자는 측근들의 호소를 물리치고 오히려 이들에게 당내 경쟁자였던 이기택 세력을 지원하게 했다. 결국 자신이 떠난 빈자리에 새살이 돋고, 야당은 살아나고, 그런 토대에서 다시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 넷째, 실력의 정치다. 김대중 대통령의 독서와 공부는 유별나다. 남들이 뭐라고 수군거리건 측근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새정치연합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툭 하면 장외로 나갔다. 공부는 뒷전이고 패거리 정치에 열심이다. 실력과 품격은 떨어졌다. 안철수 의원 측과 결합을 했지만 기득권 포기가 없으니 그들이 비집고 설 땅도 없다. 패배한 대선 후보는 당의 새출발을 도울 밀알이 되기는커녕 당권 탈환에 나섰다. 국민의 신뢰는 20%에서 맴돈다. 이래서는 가망이 없다. 김대중 정신에 야당 회생의 답이 있다. 2·8 전당대회에서 한꺼번에 많은 것이 해결될 수는 없다. 다만 10년 야당의 와신상담을 딛고 다시 집권의 길로 들어서느냐, 반대의 길로 치닫느냐, 어렴풋한 윤곽은 그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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