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진은 1995년 SBS 슈퍼엘리트모델 선발대회를 통해 데뷔했다. 키 180㎝에 부드럽고 친근한 얼굴로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대표적 모델로 활동했다. 런웨이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CF에도 출연하며 다양한 재능을 보여줬다.
골프를 시작한 건 2006년쯤이다. 지인들과 함께 가끔 필드에 나가 친목을 도모했다. 특별한 레슨 없이 그때그때 배워가며 스윙을 했다. 그나마 2008년 결혼, 2011년 경기대 모델학과 강의를 나가면서는 짬을 내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지난해 초부터 골프에 푹 빠져들었다. ‘슈퍼모델골프단’ 창단과 함께 단장을 맡게 되면서 골프를 제대로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슈퍼모델골프단과 미스코리아 출신 골프단이 대결을 벌이는 ‘퀸스컵’ 자선 골프대회가 지난해 여름부터 출범했다. 첫 대회를 앞두고 슈퍼모델골프단의 단장으로서 대충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주일에 5일씩 필드에 나갔다.”
그렇게 준비한 제1회 퀸스컵 대회에서 이선진의 슈퍼모델팀은 미스코리아팀에 보기 좋게 졌다. 이긴 팀에는 우승 상금 2000만 원, 진 팀에는 1000만 원의 상금이 돌아갔다. 상금은 각각 미스코리아 녹원회와 슈퍼모델 아름회의 이름으로 기부단체에 전달됐다.
“실은 개인 성적으론 거의 1위를 했다. 그러나 단체전이어서 합계 점수에서 밀렸다. 너무 아쉬웠다. 기왕이면 우승해서 아름회가 후원하는 곳을 더 많이 돕고 싶었다. 오기가 생겼다. 올해 2회 대회는 좀 다를 것이다. 더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올해 대회는 7일부터 중국 하이난(海南)에서 열린다. 이번엔 슈퍼모델, 미스코리아 연합팀과 연예인 골프단이 맞붙는다. 역시 우승 상금은 아름회와 녹원회의 이름으로 기부단체에 전달될 예정이다.
퀸스컵을 준비하며 흘린 땀은 좋은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이전에 90타를 넘던 평균 타수가 80대 후반으로 들어왔다. 지난봄엔 생애 최고 성적인 83타를 기록했다. 강원 문막에 있는 센추리21 골프장에 부부동반 라운드를 갔다가 해냈다. 그날따라 거침없이 잘 맞았다. 감이 참 좋았다.
이선진은 라운드 때 주변 사람들에게 “감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누구처럼 골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거나 데이터를 맹신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감으로 친다. 그런데도 안정적인 스코어가 나온다.
“감 중에서도 거리감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식이다. 세컨드샷을 칠 때 홀까지 남은 거리를 맨눈으로 확인하고 캐디에게 먼저 ‘120m 남은 거 맞느냐’고 물어보면 캐디가 ‘맞다’고 해 다들 깜짝 놀란다. 볼을 보고 있노라면 남은 홀까지 거리와 각도, 임팩트 강도 등이 마치 스크린 골프의 데이터처럼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이건 나도 참 신기하다.”
이선진은 거리에 관한 한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 번 가본 길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운전과 주차도 남자보다 잘한다. 외모는 여자지만 은근히 남자다운 터프함이 있다.
“그동안엔 골프채도 남자용을 썼다. 내 키에 맞는 여성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클럽 피팅을 했다. 키는 큰데 근력은 적은 편이고 팔다리는 긴 모델이 피팅하기 어려운 체형이라고 하더라.”
이선진은 당분간 두 번째 퀸스컵 준비에만 몰두할 계획이다. 건국대 대학원 의류학과 박사학위를 수료한 터라 논문을 제출해야 하지만 골프단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대회를 무사히 마치는 게 더 급하다. 또 그래야 아름회의 후원을 기다리는 미혼모 아이들과 천사원의 장애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나눠줄 수 있다.하지만 골프의 목적이 오로지 자선활동만은 아니다. 그에겐 아직은 섣부른 꿈이 있다. 패션모델과 연기자, 방송인으로서의 활동도 계속하겠지만 학교 강의와 프로골퍼의 꿈도 꾸고 있는 것이다.
“슈퍼모델 중에 차서린이라는 후배가 있다. 예쁘고 재능 많은 친구인데 패션모델에서 프로골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나도 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세미프로 정도까지 도전하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방송 활동 외에 뭔가 집중할 수 있던 게 골프 같기 때문이다. 일단 한번 잘해보고 싶다. 골프는 한 번 해볼 만한 스포츠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 5년 안에는 프로 무대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선진에게 골프란 = 나에게 특별한 감각을 일깨워준 스포츠다. 학교 강의 등 새로운 일에 대한 자신감도 심어줬다. 게다가 이를 통해 봉사까지 할 수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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