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호 / 농촌진흥청장

‘이겨라, 견뎌라, 미쳐라, 독해져라!’ 세상이 청춘에게 강요하는 말들이다. 이력서에 특별한 경험을 써넣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매 순간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살아남는다. 그러나 끝날 것 같던 치열한 경쟁의 굴레는 평생의 과제로 남곤 한다. 쉼 없이 경쟁해야 하는 사회, 숨 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만큼 상처받은 삶, 위로가 필요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렇게 팍팍하고 고단한 생활은 비단 젊은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5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세계 일곱 번째로 ‘30-50클럽’에 가입할 것이라는 전망(현대경제연구원)이 나왔다. 이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경제 대국 반열에 들어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대외적인 성장의 이면에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남아 있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의 수명은 3년이 늘었지만, 그중 2년은 앓아야 했다. 노인 빈곤율은 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배에 달하며, 노인자살률(65세 이상 10만 명당 64명)도 3배에 이른다. 또, 출산율도 1.3명 미만으로 13년째 ‘초저출산’ 국가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 시간은 하루 30분도 채 안 되고, 청소년은 학교폭력과 비만, 스트레스 등으로 삶의 만족도도 낮은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도 우린 모두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치유 농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소년교도소에 수감된 청소년을 대상으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한 결과, 불안감과 우울감, 공격성이 떨어졌다. 또, 하루에 2시간씩, 텃밭에서 채소와 꽃을 가꾼 노인들은 우울감뿐만 아니라 콜레스테롤, 체지방이 줄었다. 원예 활동에 참여한 중증 치매환자들은 증상이 완화되고, 뇌졸중 환자들은 손가락 근육의 활동성이 높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텃밭 활동에 참여해본 학생은 정서적으로 지지해줄 사람이 많다고 느끼며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도도 높았다.

이를 반영하듯 대학에서는 속속 원예치료학과와 동물매개치료학과 등 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있으며, 민간 자격과정도 30종 이상으로 늘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며 건강과 질병 관리에 드는 비용을 줄여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치유 농업의 사회경제적 효과는 최소 1조60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유럽은 이미 2000년대 들어서면서 치유 농업에 집중해 현재 3000개 이상의 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그중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프랑스, 노르웨이, 벨기에,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아 농업 생산과 치유 효과까지 얻고 있다. 주로 학습장애,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치매 노인, 취약 어린이가 도움을 받고 있다.

치유 농업의 본질은 심리적 안정과 생활의 여유를 통한 건강 회복과 지속 가능한 삶을 선물하는 데 있다. 지금은 사회 구석구석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농업이 가진 치유의 힘을 활용할 때다. 의료와 복지·상담·교육 등 각 분야에서 머리를 맞댄다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간디는 “누구도 내 허락 없이 나에게 상처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원치 않는 상처에 아파하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찢기고 다친 마음은 다독여줘야 한다. 상처투성이인 나날에 또 다른 흉터가 남지 않도록 꽃과 채소의 따뜻한 손길로 위로받는 건 어떨까.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