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 논설위원

박근혜정부만 모른 체하던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는 집권당의 내부 고발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제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갈래다. 지금의 복지 체계를 손보는 것, 아니면 증세로 현 체계를 지탱하는 것이 선택지다. 정치권은 이미 후자 쪽을 기웃거린다. 나라 곳간이 감당 못 할 과잉 복지를 조정하는 게 모범답안이지만, 줬다가 빼앗는 일은 정치인에겐 금기에 속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여야가 합의하면 증세할 수 있다고 물러선 마당이다.

증세 논의는 3대(大) 세목인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중에서 선택하는 작업이다. 연말정산 파동을 겪은 터라 소득세는 뜨거운 감자이고, 부가세는 서민 주머니까지 턴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증세 논의 과정은 곧 표(票)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표적이 되고 있는 세금이 법인세다. 법인에는 ‘표’가 없다. 게다가 반(反)대기업 정서에 기댈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야 진작에 이명박정부가 25%에서 22%로 내린 최고세율을 원상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새누리당도 슬슬 가세하는 기류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어제 “법인세도 성역 아니다”고 한 발언은 그 신호탄이다. 그러잖아도 비박(非朴) 세력의 부상으로 당에 정책 주도권이 넘어가는 상황이다.

여야, 혹은 국민적 합의로 증세가 결정되면 법인세도 물론 예외가 될 순 없다. 문제는 법인세를 올리자는 주장에 오해와 오류가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인상론자들은 근로소득세 실효 세율이 2009년 10.6%에서 2013년 11.3%로 오른 반면, 법인세 실효 세율은 같은 기간 19.6%에서 16.0%로 떨어졌다는 통계를 근거로 든다. 월급쟁이 주머니를 털어 기업 세금을 깎아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2008년부터 2013년 사이 대기업의 세금 부담이 10조9000억 원 늘었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법인세율은 내렸지만 최저한세율 인상, 비과세·감면 축소로 체감 효과가 없었다는 뜻이다. 감세 혜택은 12조 원 가까이 부담을 줄인 중소기업에 주로 돌아갔다.

법인세율이 외국에 비해 높지 않다는 지적은 맞다. 명목 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23.3%보다 다소 낮다. 반면 201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부담률은 3.5%로 OECD 32개국 중 6번째로 높다. 오히려 소득세 부담률은 3.6%로 OECD 평균 8.4%의 절반에도 크게 못 미친다. 소득세를 올릴 여지가 법인세보다 훨씬 크다는 의미다. 복지와 연계된 증세라면 ‘남의 세금’이 아니라 ‘내 세금’이란 실감이 있어야 복지 수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유도할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는 법인세율과 투자는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투로 말한다. OECD국 중 2008년 이후 법인세율을 내린 나라는 13곳, 올린 곳이 4곳이다. 그리스·멕시코 등 재정 파탄을 겪는 국가를 빼곤 모두 경쟁적으로 ‘법인세 세일’에 나서는 중이다. 투자 유치 의지는 세율로 표시된다. 부자 증세를 외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소비세 인상으로 곤욕을 치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 총리도 법인세에 관한 한 예외가 아니다. 이탈리아 국민기업 피아트가 지난해 세법상 주소지를 영국으로 옮긴 것은 상징적이다.

법인세를 부자 세금인 양 포장하는 것은 대표적 오류다.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도 법인세를 내렸다. 국내에선 한 해 소득이 200억 원을 넘으면 22%, 2억 원 이하엔 10%, 그 사이엔 20% 세율이 적용된다. 삼성전자라도 수익이 없으면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빈부 개념은 없다. 대다수 선진국이 기업·소득 크기에 무관하게 단일세율을 적용하는 이유다. 게다가 법인세 실질 담세자는 법인이 아니라 주주다. 세율을 올리면 소비자 등에 전가된다. 결국 법인세 부담은 국민이 고루 지는 것이다.

제조업 성장엔진이 식어가면서 지난해 광공업 생산 증가율은 0으로 떨어졌다. 세수는 11조 원 이상 미달했다. 복지에 쓰자고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소득·투자·고용 정체-가계 위축-소득·소비세 감소-국가재정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예고한다. 지금 같은 저성장 국면에는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당장 급하다고 알 낳는 거위에게 칼질하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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