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호지스의 앨런 튜링 전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
앤드루 호지스의 앨런 튜링 전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 앤드루 호지스 지음, 김희주 옮김 / 동아시아

2011년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영국 의회 연설 중에 뉴턴, 다윈과 함께 앨런 튜링(1912∼1954·오른쪽 작은 사진)을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꼽았다. 정치인이 과학적 명성과 업적을 판단할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바마의 선택은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재 수학자 튜링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반영한 것일 수밖에 없다. 오바마의 언급을 전후해 튜링에 대한 역사적 조치들이 차례로 이뤄졌다. 2009년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총리는 튜링의 재판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했고, 201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3년 3월 31일 그 재판에서 ‘중대 외설 행위(동성애)’로 유죄 판결을 받은 튜링에 대한 특별 사면을 실시했다. 역사적 복권.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시간만큼이나 뒤늦은 결정이었다.

영국 수리 물리학자 앤드루 호지스가 쓴 책은 이 전설적인 수학자의 삶을 담은 방대하고 빽빽한 전기이다. ‘전설적’이라는 표현이 명료한 수학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국가 기밀주의 때문에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암호를 해독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업적은 숨겨야 했고, 현대 컴퓨터 공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임에도 당대의 풍속에 삶은 짓밟혔고, 결국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자살해야 했으니 그리 틀린 표현은 아니다. 또 그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는 애플 로고의 모티브가 됐다는 설도 떠도니 그의 삶은 비밀과 비극, 존경과 아우라, 흥미로운 에피소드까지 뒤얽힌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튜링의 삶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제작돼, 17일 국내 개봉된다. 이 영화의 원작인 전기는 튜링의 출생부터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을 거쳐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 과정을 세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연대기적 서술 속에서도 ‘세계대전 당시 암호 해독’과 ‘동성애와 관련된 재판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사건이 전기의 흥미로운 두 축이다.

그가 런던 북쪽 블레츨리 파크에 위치한 정부신호암호 학교의 암호 해독반 책임자로 일하게 된 것은 1939년, 27세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외톨이 기질이 강했지만 수학에서만큼은 천재적이었던 그는 킹스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현대 컴퓨터의 모델로 불리는 ‘튜링기계’를 만들어 연구를 계속하고 있던 때였다. 튜링이 투입되기 전까지 독일의 암호 에니그마(Enigma)는 난공불락이었다. 난해한 에니그마는 매일 회전자 위치를 바꾸기 때문에 24시간 안에 그날 암호문을 해독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었다. 이에 튜링은 암호 해독기 봄베(Bombe)를 만들고, 1940년 이를 해독해내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비밀작전이었던 블레츨리 파크팀의 활약을 공개하지 않았고, 튜링의 업적 역시 전쟁이 끝난 뒤 30년이 지나서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스스로도 함구했던 그는 전후 맨체스터대 왕립협회 전산 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며 인간의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전자 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영국왕립협회 회원으로 선출되고, 대영제국 훈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52년 자신의 남자 친구와 얽힌 사건으로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밝히면서 그의 삶은 추락하게 된다.

그는 ‘중대 외설 행위’라는 죄목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지만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징역형 대신 화학적 거세인 ‘여성 호르몬 투여’를 선택한다. 이로 인해 신체변화까지 겪은 그는 1년 뒤 자살을 선택한다. 저자는 시신 옆에 놓인 사과에 묻은 청산가리는 천재 수학자의 삶을 집어삼킨 시대의 한계이자 폭력이라고 비유한다.

872쪽의 분량. 건너뛰는 법 없는 세세한 기록과 서술로 그리 읽기 쉽지는 않다. 하지만 개방적 자유주의자였고, 실존주의자였던 천재 수학자의 시대에 갇힌 삶, 이것이 피워올리는 인간과 시대에 대한 사유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인내하며 따라가게 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