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사무실에서 만난 문화기획 사회적기업 ‘티팟’의 조주연(48) 대표는 “공공 공간을 만드는 공무원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자신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곤 한다”며 “티팟은 공공 공간이라는 하드웨어에 시민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9월 문을 연 서울시 신청사의 시민청 공간 기획 프로젝트를 맡은 티팟은 우리나라 1세대 사회적기업이다. 2004년 공연, 미술, 축제, 공공 등 다양한 문화영역에서 ‘시민참여’라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태어났다. 티팟은 고용노동부가 사회적기업을 제도적으로 도입한 이듬해인 2008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올해로 사회적기업 인증 8년째를 맞은 티팟은 그동안 전북 진안군 백운면 간판 디자인 사업, 강원 철원군 지역 공간 활성화 기본계획 사업 등을 통해 주민의 욕구를 지역 사회에 반영하는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시민청’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은 티팟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한껏 드러낼 기회였다. 티팟은 서울시청이 시민을 위한 공간이지만 시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졌다는 문제의식에 착안했다. 이에 신청사를 최대한 개방적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 대표는 “8264㎡(약 2500평)의 시민청을 예술작품 전시와 시정 홍보 공간에 머무르게 하지 말고, 시민이 직접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며 “밥상을 다 차려놓고 시민들에게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것은 직접 차리도록 하면 더욱 개방적인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 티팟은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결혼식장, 콘서트장, 자유발언대, 나눔의 장 등으로 시민의 공간을 꾸몄다. 앞으로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다 채우지 않고 여백도 많이 뒀다.
시민청과 사무실을 잇는 공간에는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서울시의 의지를 담아 귀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했다. 공간을 꾸미는 것보다 공간이 시민을 위해 제대로 운영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운영에 참여하도록 했다. 조 대표는 “지금은 하루 7000명 이상의 시민이 시민청을 방문해 문화 공간을 향유하고 있다”며 “공무원들이 독점한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시민청 프로젝트에서 기획력을 인정받은 티팟은 경기 광교에 새로 지어질 경기도청의 공간 기획도 맡게 됐다. 경기도의회에서 통과된 기본계획에 따르면 경기도 신청사는 이전과 특별한 차이가 없는 행정 공간으로 기획된 상태였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신청사를 도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70% 넘게 진행된 신청사 설계를 중단했다. 경기도로부터 신청사 공간 기획을 의뢰받은 티팟은 현재 4개월에 걸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조 대표는 “경기도 소속 31개 시·군에 의견을 묻고, 각 시·군에 게시판을 설치해 도민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며 “실제 공간의 수혜자가 될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면, 공공 공간이 놀라운 곳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티팟은 경기도 신청사 프로젝트와 함께 새로 지어진 광주시청의 5619㎡(약 1700평) 공간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1026명의 광주시 시민과 전문가, 공무원 등 총 1058명의 의견을 듣고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던 조 대표는 ‘대중이 공유하는 예술’이라는 디자인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고자 티팟에 몸담았다고 한다. 그는 “사회비평가 존 러스킨은 예술이 몇몇 부호를 위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는 ‘예술 민주화’를 주창했고, 그 과정에서 현대사회의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생겼다”며 “최근에는 디자인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진짜 디자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티팟은 수익을 창출하면서 사회적 가치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성공적으로 생존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위기도 있었다. 직원 5명의 영세 기업이었던 티팟은 2007∼2008년 정부의 사회적기업 인건비 지원에 힘입어 임직원을 40∼50명까지 늘렸다. 사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바탕에 있었다.
하지만 직원이 늘어나자 인건비뿐만 아니라 비품 구매 비용, 사무실 확장 비용 등 예상치 못한 부담이 급속도로 늘었다. 결국 2009년에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 위기에 직면했다.
조 대표는 “당시 상당수 사회적기업이 이런 이유로 망했고, 티팟도 그 직전이었다”며 “다행히 한 디자인 회사의 자회사로 들어가 몇 년 있으면서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40∼50명에 이르던 직원 수는 9명까지 줄었다. 그는 “사회적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수익 창출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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