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 지상파 방송사가 지급하는 제작비는 실제 제작비의 50%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2억 원 안팎이다. 나머지는 해외 판매 외에 각종 제작 지원 등 PPL(Product Placement·제품간접광고)을 통해 충당된다. 해외 판권액은 유동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외주 제작사들의 믿을 구석은 PPL이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 커피, 휴대전화, 화장품은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이 4가지 품목이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는 거의 없다. 출연 배우들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곳은 항상 특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고, 그 공간을 벗어나 이동할 때는 차를 탄다. ‘드라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여배우들은 가장 예쁜 얼굴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밀고, 그들의 립스틱과 메이크업은 여성 시청자들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또한 전화벨은 수시로 울린다. 네 가지 품목만으로 외주 제작사가 각 업체로부터 현금 지원 외에 각종 현물 제공을 통해 얻게 되는 수익의 합은 16부작 기준으로 20억 원에 육박한다.
중국 내 드라마 한류를 촉발시킨 ‘별에서 온 그대’는 이런 PPL의 홍보 효과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극중 주인공 천송이(전지현)가 탄 벤츠가 ‘붕붕이’라 불리며 엄청난 판매 인상을 기록하자 벤츠차이나 마케팅팀에서 중국 현지의 반응을 전하며 벤츠코리아에 감사의 뜻을 담은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일명 ‘천송이 립스틱’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이 드라마에 제작지원사로 참여한 D 커피 프랜차이즈의 인지도도 상승했다. ‘별에서 온 그대’를 촬영한 김포걸포점의 매출은 방송 전과 비교해 155% 신장됐고, 극 중 주인공들이 즐겨 마시던 음료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단골 메뉴가 됐다.
지난해 3월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중국에서 명품을 팔고 싶으면 한국 드라마에 PPL을 의뢰하라”고 보도할 정도니 한류스타들이 직접 먹고, 타고, 쓰고, 치장하는 커피, 자동차, 휴대전화, 화장품을 기대작에 넣기 위한 각 업체들의 경쟁은 대단하다.
배우 현빈의 복귀작으로 관심을 모은 SBS 수목극 ‘하이드 지킬, 나’의 경우 주인공 구서진(현빈)이 타는 자동차를 제공하기 위해 벤츠를 비롯해 유명 외제차 업체 두 곳과 국내 자동차 회사 한 곳이 업계 최고 대우를 제시했다. 결국 벤츠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다른 업체들은 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휴대전화 신제품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도 드라마다. 휴대전화가 생활 필수품이 되면서 드라마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고,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은 신형 휴대전화는 출연 배우의 이름을 붙여 ‘OO폰’이라 불리며 인지도를 높인다.
하지만 간접광고비가 100% 외주 제작사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CF업계에서 각광 받는 스타들은 직접 PPL을 유치하기도 한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주연 여배우가 자신이 CF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화장품을 노출시킨 뒤 광고비를 가져가기도 한다”며 “외주 제작사 입장에서는 권리를 뺏기는 것이기 때문에 불쾌하지만 괜한 잡음을 만들고 싶지 않아 스타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한 출연 배우가 특정 회사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으면 드라마 속에서라도 라이벌 회사의 물품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제작사와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렇다면 사극은 어떨까. 사극에는 PPL 4대 천왕이 설 자리가 없다. 대부분 장면이 세트장에서 촬영되고, 준비된 의상을 입기 때문에 PPL을 유치하기 어렵다. 이 경우 물품을 노출시키기보다는 드라마 말미에 제작지원 업체의 로고를 넣는 식으로 참여한다.
‘쓰리데이즈’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을 제작한 골든썸픽쳐스의 양혁준 이사는 “사극은 현대극에 비해 회당 제작비도 더 많이 든다. 반면 PPL을 유치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에 통상 방송사가 더 많은 제작비를 지원하고 특정 장소를 드라마의 배경으로 삼으며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을 이끌어낸다”고 설명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