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까지만 해도 분명 ‘서브’였다. 하지만 요즘 그들은 두말 할 것 없는 ‘메인’이다. 힙합에 뿌리를 둔 래퍼들의 이야기다.
한국 가요 시장에 랩이 등장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많은 이의 기억 속에 랩은 메인 보컬을 보조하는 정도로 여겨졌다. 래퍼들은 유명 가수들의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고, 그룹 속 래퍼의 존재도 보컬에 비해 미미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래퍼의 위상도 바뀌었다. 래퍼 자이언티(사진 왼쪽)와 크러쉬(오른쪽)가 합작한 ‘그냥(Just)’은 지난 2일 공개된 후 나흘간 대다수 차트 정상을 지켰다.
지난달 초 래퍼 매드 클라운이 발표한 ‘화(Fire)’ 역시 공개 후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부분 음원사이트에서 5위권에 머물고 있다. 백지영, 다비치, 노을 등 음원 시장 강자와 슈퍼주니어의 규현, 씨엔블루의 정용화, 샤이니의 종현 등 쟁쟁한 아이돌 가수들 사이에서 일군 성과라 더욱 값지다.
현재 가장 주가가 높은 래퍼군(群)으로 분류되는 다이나믹듀오와 리쌍은 타 가수들에게는 기피대상이다.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중견 그룹인지라 일단 신곡을 발표하면 각종 음원 차트 1위는 통과의례처럼 거쳐 간다. 지난해 10월 솔로로 나선 다이나믹듀오의 멤버 개코는 서태지와 김동률이 양분하던 10월 가요계의 흐름을 힙합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리쌍 역시 자신의 곡뿐만 아니라 멤버 개리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들이 음원 시장에서 강세를 보인다.
다이나믹듀오와 크러쉬, 프라이머리 등이 속한 아메바컬쳐 관계자는 “랩이 그 자체로 홀로 설 수 있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TV에는 자주 출연하지 않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묵묵히 실력과 터를 닦은 이들의 노력과 그들을 인정해주는 대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이로 인한 관계 역전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기존에는 여성 솔로의 무대에 피처링으로 힘을 보태는 래퍼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래퍼들의 무대에 여가수들이 참여하는 빈도수가 늘고 있다. 그룹 매드소울차이드의 보컬 진실은 MC몽의 ‘내가 그리웠니’와 매드 클라운의 ‘화’를 피처링했고, 정인은 그룹 리쌍의 단골 피처링 가수다. 이 외에도 ‘속사포 래퍼’라 불리는 아웃사이더는 신곡을 발표하며 여성 보컬 나비의 목소리를 빌렸다.
래퍼를 포함한 힙합 가수들은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실력보다 인지도’가 앞서는 일부 가수들은 ‘인지도보다 실력’이 출중한 래퍼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뮤지션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려 한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대중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더 각광 받는 일부 래퍼들은 연예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며 “이런 래퍼들과 협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음악성을 재평가받고 새로운 팬층을 확보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낸다”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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