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 논설위원

러시아 국민 사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인기는 대단하다. 경제상황 악화와 서방 국가들의 비판에도 불구, 여론조사 지지율은 70%에 달한다. 일부 전문가는 “내가 아는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푸틴에 대해 비판적”이라며, “여론조사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10월 혁명을 직접 취재한 존 리드의 저서 ‘세계를 뒤흔든 10일’이 생각난다. 당시 많은 서방인은 자신이 만난 러시아인들이 볼셰비키에 반대한다면서 볼셰비키 혁명은 곧 붕괴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리드는 “그들이 러시아인을 만난 곳은 살롱이나 레스토랑이었는데, 내가 참호와 공장에서 만난 병사들과 노동자들은 볼셰비키 혁명을 지지하고 있었다”고 서술했다.

푸틴에 대한 높은 지지 원인을 알기 위해선 ‘1990년대 러시아 트라우마’를 이해해야 한다. 당시 러시아는 혼돈, 그 자체였다. 사회주의 배급체제는 해체됐으나 시장경제 체제는 확립되지 않았으며, 공권력이 붕괴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데모크라시’를 ‘데리모크라시’라 불렀다. ‘데리모’는 러시아어로 ‘분뇨’다. 러시아 대중이 ‘분뇨 체제’를 치우고 질서를 가져다줄 ‘리바이어던’을 고대하고 있었을 때 푸틴이 등장했다.

‘강한 러시아’를 내세운 푸틴 정권이 고유가로 인한 경제호황과 맞물리며 강화됐을 때, 알렉산드르 두긴으로 대표되는 ‘슬라브 지정학(地政學)파’가 푸틴 정권의 핵심이 된다. 이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산업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구 시장경제가 러시아에 맞지 않기에 경제 문제가 발생했다고 믿는다. 이들은 “러시아를 맹주로 한 대륙세력 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양세력 간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란 기본 틀 속에서, “우크라이나 확보만이 러시아가 안보·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작년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사태는 바로 이런 이념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일부는 경제 위기가 계속되면, 푸틴 정권이 흔들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중·단기적으로는 정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푸틴은 현 러시아 경제 위기를 미국의 음모 탓으로 돌리고 있으며, 이 주장은 러시아 대중에게 먹혀들고 있다. 푸틴은 2년 안에 러시아 경제는 회복될 것이며, 이를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경제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푸틴이 외부에 배타적인 러시아 정서를 이용, 정권 위기 돌파를 시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정학자 조지 프리드먼은 저서 ‘100년 후’에서, ‘미·러 간의 리턴매치’가 2015년쯤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견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했으나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다시 일으켰던 것처럼, 냉전에서 패배한 러시아의 재도전은 ‘지정학의 숙명’이란 것이다.

문제는 결국 우리다. 우리의 대(對)러 전략은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의 국제관계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마찬가지다. 변화한 상황과 변화하는 방향에 부응하지 못한 구상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sjhwang@munwh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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