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재수사 · 英 청문회… 전세계 후폭풍 고액재산가 명단 10만명 공개
덴마크·프랑스 등도 조사착수

한국인 명의 계좌 20개 포함


유럽 최대 은행 HSBC의 스위스 PB(개인자산관리)사업부가 203개국의 부호고객 10만6000명의 불법탈세를 방조했을 혐의가 제기되면서 각국에서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한국인 명의의 계좌도 20개로, 총 2130만 달러(약 233억 원) 규모다 .

로이터통신은 9일 미국 검찰이 지난 2012년 HSBC와 19억 달러의 벌금에 합의하면서 마무리했던 마약조직 돈세탁혐의에 대한 재수사를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에서는 노동당 소속의 마거릿 호지 하원 공공회계위원회 위원장이 HSBC의 비리를 규명하기 위해 의회 차원에서 재조사하고 청문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호지 위원장은 9일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HSBC 비리에 대해 세무 당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를 비판했다. 벨기에 사법부는 HSBC 스위스 BP 책임자들에 대한 국제영장 발부를 고려 중이며, 덴마크와 프랑스 정부는 HSBC 고객 명단에 오른 자국민의 탈세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발발 이후 국제사회의 압력에 따라 금융비밀주의를 사실상 포기한 스위스 정부는 또다시 자국이 탈세의 온상처럼 비칠까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스위스 의원들 역시 정부에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HSBC 측은 9일 성명을 통해 “법률 준수 노력이 미흡했다”면서도 “ 2007년 이후 과감한 개선을 취해 현재는 훨씬 엄격한 신고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고객들이 법률을 준수하고 세금을 내도록 하는 한편 이를 따르지 않는 고객들의 계좌는 폐쇄하는 것이 은행의 일부 책임임을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HSBC의 ‘검은 계좌’ 비리가 불거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 유로존 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을 당시 그리스의 시사주간지 ‘핫도그’의 발행인 겸 편집장인 코스타스 박세바니스가 이른바 ‘라가르드 명단’을 폭로해 그리스는 물론 전 유럽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라가르드 명단’은 이번에 폭로된 명단의 일부로, 10만6000명 고객 전원의 계좌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프랑스 재무장관 시절인 지난 2009년쯤, HSBC 직원이었던 에르베 팔치아니가 몰래 빼낸 검은 계좌 명단을 넘겨받아 프랑스인 등 외국인 고객 명단을 확인했고, 이를 스페인·이탈리아·독일·미국 등과 공유해 각국 국세청이 조사하도록 만들었다. 그리스에서는 라가르드 명단을 전달받았던 사회당 정부가 아무런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정치스캔들로 비화되기도 했다.

앞서 8일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HSBC PB사업부의 내부 문서를 프랑스 르몽드 등과 협력해 입수, 140여 명의 언론인 회원들을 동원해 심층 분석한 결과 이 은행이 국제범죄자, 부패한 정치인과 기업인, 유명연예인 등에게 계좌를 개설해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2007년에 작성된 이 문건에 따르면 HSBC PB사업부는 203개국의 개인과 법인 명의로 개설된 10만6000개의 계좌를 통해 약 1180억 달러를 관리했다.

국가별 금액은 스위스(312억 달러), 영국(217억 달러), 베네수엘라(148억 달러) 미국(134억 달러), 프랑스(125억 달러) 순이고 고객 수로는 스위스(1만1235개 개인 및 법인), 프랑스(9187개), 영국(8844개), 브라질(8667개), 이탈리아(7499개) 순이다. 역외 계좌가 불법은 아니지만, HSBC 스위스 PB고객 상당수가 계좌를 통해 불법탈세를 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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