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많은 사람이 예감했던 우려가 어쩌면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헌법재판소가 내린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 자격상실 결정이 오는 4·29 보궐선거를 통해 까딱 잘못하면 웃기는 소극이 될 가능성 때문에 하는 말이다. 물론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에 따른 소속 정당 국회의원의 자격 문제는 헌법이나 헌법의 구체화 규범인 하위 법률에서 명확한 규정을 두지 않아 헌재가 고심 끝에 법리적인 판단과 함께 정책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옛 통진당 소속 김미희·이상규 전 의원(議員)이 오는 4월 보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는 우리의 기본적인 헌법 질서에 반하는 한 이데올로기 정치집단의 잔존 세력들이 헌재의 결정에 정면 도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양보할 수 없는 기본 가치들에 대한 교란 전략 의지를 분명히한 것이다. 그들의 출마의 변을 들어보면, 헌재가 헌법과 법률에 없는 의원직 박탈을 결정한 것은 초법적 권한 남용에 해당하므로 지역 선거구민들의 투표권 행사를 통해 정치적인 반전을 꾀해 보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선거판에 뛰어들어 온갖 거짓과 선동술을 동원해 선량한 민의를 노략질하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헌법 질서의 테두리 밖에 있는 극단적인 정치 세력들이 합법적으로 국정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일이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했던 히틀러의 나치당도 애초에는 폭력혁명을 동원한 게 아니었다.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인 이데올로기 투쟁과 민주정치의 맹점을 악용해 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독재 권력을 수립했던 것이다. 나치의 만행을 뼈저리게 체험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헌법 질서 속에서 비로소 민주정치는 이제 자신을 부정하는 정치 세력에 대해서까지 관용해서는 안 되고,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는 방어적·전투적 민주주의 원리가 확립됐다. 옛 통진당 해산 결정에도 이 같은 이념이 뒷받침됐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이를 실효성 있게 뒷받침할 만한 후속 입법조치가 미비한 틈을 타, 옛 통진당 소속 정치세력들이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이를테면 ‘은밀하고 위대하게’ 여의도에 재입성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공직선거법과 정당법 등 정치 관련 법률들을 여야가 기민하게 손질해 국법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그로 인한 법치와 정치의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면서 이를 뻔히 보고도 미적거리는 행태는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입법부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행정자치부, 법제처, 선거관리위원회 등 유관 기관도 헌재의 판단을 백분 헤아려, 이 같은 웃지 못할 코미디가 일어날 소지를 없애는 데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9월 13일 해산정당 소속 국회의원 등의 피선거권을 10년간 제한하는 취지의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2월 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상정된 이후 여태 방치되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 사이 대법원에서도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에 대한 내란선동죄 유죄를 확정함으로써 옛 통진당과 그 구성원들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성과 시대착오적인 정치 성향이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국가가 국법 보완의 임무에 태무심한 사이, 희대의 정치적 소극이 법치주의를 농락하는 데까지 이르게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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