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발표한 詩·산문 모아 국내 연구학자들 전집 출간‘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올겨울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걸린 ‘광화문글판’의 시구,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용악(1914∼1971·사진) 시인의 ‘그리움’(1945)을 발췌한 것이다. 함경북도 경성 태생인 그는 해방 후 서울에 홀로 올라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어쩌자고 잠을 깨어/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인 고향을 노래했다.

이용악은 백석과 함께 193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두 시인 모두 1987년 월북작가 해금조치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됐다. 하지만 백석이 현재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반면, 이용악은 잊혔다. 학문적으로도 백석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 다양한 논문과 전집이 쏟아져 나왔으나, 이용악은 전집은커녕 1988년 출간된 ‘이용악 시전집’마저 절판됐다.

이는 정치적 이유가 크다. 백석은 북한에 남아서 체제에 적극 협조하지 않고 기존의 문학적 태도를 유지했다. 그 때문에 초라한 말년을 보냈다. 이용악은 달랐다. 해방공간에서 남로당 활동으로 옥살이를 한 그는 6·25전쟁 당시 서울을 잠시 점령했던 인민군을 따라 북한으로 넘어갔다. 1953년 북의 남로당 숙청 당시 연루됐지만, 이후 체제를 옹호하는 많은 작품들을 쏟아내며 복권됐고 사망 직전까지 북한 문단의 중심에 섰다. 2003년, 사망 뒤에도 통일 위업에 바친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김정일로부터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이용악에 대한 연구는 학자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최근 곽효환 시인, 이경수 중앙대 국문과 교수, 이현승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등 중견이용악 연구자 3인이 펴낸 ‘이용악 전집’(소명출판사)은 국내에서 출판되는 그의 첫 전집이다. 1000쪽에 달하는 책에는 월북 이전에 발간한 시집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이용악집’(1949)뿐 아니라 월북 이후 낸 ‘리용악시선집’(1957)의 작품까지 망라했다.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시와 좌담자료, 산문집 ‘보람찬 청춘’(1955) 등 새로 발굴한 산문들까지 실었다. 월북 이전의 시만 모은 기존의 시선집을 넘어 그의 전 작품을 담으려 했다.

이용악의 월북 이전 시들은 서정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일제 식민치하의 민족적 설움과 비참한 삶을 그린다. “너는 오랑캐의 피 한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중략)/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보렴 오랑캐꽃”(오랑캐꽃)이라며 생계를 위해 만주로 떠난 동포들을 보듬고,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중략)/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낡은 집)면서 피폐해진 조국의 땅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월북 이후 이용악이 써낸 작품들은 그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 ‘핏발 선 새해’ 등 제목만 들어도 섬뜩하다. “미제를 무찔러 살인귀를 무찔러/(중략)/최후의 한 놈까지 원쑤의 가슴팍에/땅크를 굴리자”(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거나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는 한결같이/영원한 청춘이 나라/쏘베트를 우러러/샘솟는 희망을 가득히 안는다”(소베트에 영광을)고 선동한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쓴 것이든, 자발적인 것이든 시인의 변신은 분단된 민족의 역사를 그대로 대변한다. 곽 시인은 “이용악은 비극적인 한국 근대사·문학사의 흔적”이라며 “해방 이전과 이후의 작품을 모두 담아 그의 온전한 면모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