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사업하며 147개국 탐험한 ‘奧地여행 전문가’도용복 사라토가㈜ 회장

도용복(73) 사라토가㈜ 회장은 ‘오지여행 전문가’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도 회장은 경북 안동 출신이다. 어린 시절 출세를 위해 부산에 정착했고, 청년 시절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월남 파병을 지원했다. 이렇게 모은 종잣돈으로 삼성전자 대리점을 시작으로 핸드백 제조업을 했고, 골프용품 사업에 차례로 뛰어들었다.

그는 두 가지 사업을 겸하지는 않았다. 잘될 때 정리한 다음,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는 식이었다. 사업은 성공으로 이어졌고 지난 1990년부터 골프공을 비롯, 골프 장갑과 골프화 등을 생산, 판매해왔다.

골프는 골프 관련 사업을 하면서 시작했다. 시작 후 2년 만에 첫 싱글 반열에 올랐고, 요즘도 가끔 70대 스코어를 유지할 정도다. 베스트 스코어는 1언더파 71타다. 자신이 회원으로 있던 울산골프장에서 1998년 작성했다. 부산지역 싱글 골프 모임에 들어가면서 초보 때보다 연습장에 더 자주 다닐 만큼 열성적이었고, 스코어도 늘 ‘70대 초반’으로 보답했다. 골프사업을 하는데 “그것밖에 못 치느냐”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노력해왔던 것.

골프를 배운 지 10년 정도 되던 해 울산골프장에서 첫 홀인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05년쯤 외국여행 때 두 번째 홀인원을 기록했다. 요즘엔 한창때 비거리에 비해 40∼50m나 줄어 180m 정도에 그치지만, 아직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자랑한다. 80대 스코어는 꾸준히 진입하는 편인데, 오히려 비거리가 적게 나가는 탓에 큰 실수를 하지 않는 게 그 이유다.

지난해 12월 부산지역의 한 클럽챔피언과 라운드에서 79타를 쳐 1년여 만에 70대 스코어에 진입했다. 그의 골프 파트너는 늘 싱글핸디캐퍼들이 많다. 잘 치는 사람과 하면 대충대충 하기보다는 긴장을 즐기면서 골프를 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40세가 넘어서자 고엽제 후유증으로 투병생활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문득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40대 중반 이후 사업도 키워 놨으니 50세가 지나면 1년에 300일은 돈을 벌고, 65일은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 한번 끊은 비행기 티켓이 아까워 여행을 시작하면 10여 개국은 기본으로 다니면서 현지에서 가이드를 구해서 적은 비용으로도 많은 여행을 다녔다. 큰 도시 또는 선진국보다는 그 나라의 특색이나 지방의 문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 오지만 찾아다녔다. 그래서 늘 여행을 갈 때면 유언장을 갖고 다닌다. 그의 회사 이름 ‘사라토가’도 여행 때 우연히 알게 된 미국 인디언 추장의 이름에서 따왔다.

최근 아프리카 동부 지역인 시에라리온, 카메룬, 가봉, 코트디부아르 등 10여 개국을 다녀온 그는 지금까지 147개국을 여행했고, 앞으로 200개국까지 돌아보는 게 소원이다.

2000년 중앙아시아 여행 때 100번째 여행국인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였다. 여느 여행 때처럼 그는 시차 적응을 위해 맨 먼저 골프장을 찾았다. 그는 두세 시간 골프를 치면서 몰두하다 보면 시차 적응에 효과적이어서 자주 활용해왔다. 그가 찾았던 곳은 주변 5개국에서 유일한 골프장이었던 타슈켄트 레이크사이드골프장이었다.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전체 부지 155만㎡ 가운데 만년설이 녹아 이뤄진 호수만 46만㎡가 넘었고, 13개 홀이 호수를 끼고 있어 퍽 인상적이었다. 라운드 후 캐디에게 물었더니 골프장이 문을 닫을 것이란 얘기를 했다. 그는 이 골프장을 인수하기로 마음먹고 대사관에 협조를 부탁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미군이 주둔지에 조성한 골프장이었는데, 전쟁이 끝나자 폐쇄키로 한 것. 그는 지인 몇몇을 주주로 참여시키며 1년 만에 골프장을 덜컥 인수했다. 인수 후 코스를 완전히 개조했고, 그 덕에 그는 매년 가장 좋은 기후라는 6월을 포함해 1년에 두세 차례 방문한다.

그는 여행을 다니면서 100여 개국에서 200여 개 골프장을 돌아봤다. 가장 기억나는 라운드는 두바이의 사막골프장이었다. 코스래야 온통 모래밭이었고, 매트를 들고 다니며 기름 먹인 그린에 공을 올려놓는 방식이었다. 자세히 보니 홀 사이로 말뚝이 박혀 있었고, 볼이 말뚝을 넘어가면 매트를 깔지 않고 벙커 샷을 하거나 벌타를 먹고 바로 옆에서 매트를 깔고 쳐야 했다. 처음엔 벌타를 먹는 게 아까웠지만 몇 홀 돌다 보니 욕심을 버리고 매트에서 쳐야만 보기라도 할 수 있었다.

여행 후 눈에 띄게 건강이 좋아진 그는 어렸을 적 가난 때문에 이루지 못한 ‘음악도’의 꿈도 실현했다. 세 딸을 외국 유명 음대를 졸업시킨 그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직접 사사하기도 했고, 오페라에도 4회나 출연했다. 지금도 오페라 해설가로 활동하면서 가난한 음악가를 위한 무대를 마련해주며 재능기부를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다녀온 여행을 정리한 여행 안내서를 만들어 오지여행을 쉽게 알려 주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 도용복에게 골프란 = 골프도, 인생도 어프로치다. 롱 게임을 잘해도 어프로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프로치는 판단력이며 모자라는 것을 보충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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