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역사협회(AHA) 소속 역사학자들은 지난 5일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내각의 과거사 수정 시도를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취지와 경위, 배경이 궁금했다. 19명의 명단 최상단에 있는 제러미 아델만 프린스턴대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아델만 교수는 “알렉시스 더든 교수를 적극 추천한다. 이 제안(initiative)은 그녀가 했다”고 알려줬다.
알렉시스 더든, 올해 47세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다. 2012년 10월의 가을, 단풍이 아름답던 코네티컷대 캠퍼스의 연구실이 떠올랐다. 더든 교수는 워싱턴DC에서 찾아온 외국 기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는 주차장을 직접 안내해 줬고, 인터뷰 분위기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간략한 개인사도 물어봤다. 같은 해에 출생한 동갑내기고, 같은 나이의 아들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도 찾았다. 동북아 전공 학자로서 그는 한·중·일 3국 사이에 얽히고설킨 갈등의 문제와 원인을 정확하게 짚었다. 약속했던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더든 교수의 연구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없었고, 세 시간쯤 뒤 “오랜 만이다”는 말과 함께 과정을 설명해줬다. 더든 교수는 “지난해 11월 동료학자 몇몇과 일본 정부의 타깃이 됐던 허버트 지글러 하와이대 교수 지지 의견을 모았다”며 “지난 1월 2일 AHA 연례회의에서 비공식 모임을 갖고 성명 작성을 결의했다”고 말했다. AHA 소속 학자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필리핀의 역사학자들도 공감을 표시했다. AHA 3월호 회보에 실리는 편지 형식의 성명인 만큼, 미국 역사학자들로 명단을 제한하기로 했다.
미국 역사학자들의 소식은 한국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서 실시간으로 2위까지 올랐다. 공동성명 발표라는 딱딱한 기사였지만 이목이 집중됐다.
아베 총리를 향한 ‘얄미운’ 마음은 인터넷에 그대로 반영됐다. 사실 확인은 어렵지만 한국민들이 대리 만족을 얻었으리라는 짐작도 든다. 사사건건 과거 만행을 부정하는 그에게 고개를 드는 당연한 감정이다. 인터넷에는 “역시 미국”이라는 댓글도 올라왔다.
19명의 미국 역사학자는 친한파도 혐일파도 아니다. 그들은 역사는 사실 그대로 기록되어야 하고, 사실의 역사를 인정해야 인류는 진보한다는 믿음과 원칙을 가진 역사학자다. 연구의 결과물이 정치적 목적으로 수정될 수는 없다고 여기는 사관(史官)들이다. 바로 학문의 자유, 학술의 자유다.
그런데 일본은 위안부 동원의 강압성을 기록한 미국 역사교과서 집필자인 지글러 교수에게 내용 수정 압력을 가했다. 일본이 또다시 범한 국가의 오류였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법률적 사실관계로 보면 전적으로 틀린 주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인은 한국의 과거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있다.
협정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이라는 특수한 성적 착취와 강제 징용 청구권 문제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 일본의 배상금이 경제발전 동력이 됐다고 하지만, 피해자 개인에게 정부가 찾아준 부분도 없다.
지난해 8월 워싱턴을 찾은 이옥선 할머니는 “죽기 전에 일본의 사죄만 받게 해 달라”고 말했다. 유희남 할머니는 “한국 땅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럽다”고 탄식한다. 한국은 분명하게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진정한 사과이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고 일본에 말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 할머니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방안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국가의 오류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jklee@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