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 前금융감독원장

지난 10일 진웅섭 원장이 금융감독 쇄신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회사 경영에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해오던 종합검사도 폐지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시장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고 당사자인 금융회사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번에 발표된 쇄신 방안은 최근 금융권이 처해 있는 상황에 비춰볼 때 나름 의미가 크다고 본다.

최근 금융권에는 저축은행사태, 동양사태, 고객정보 유출사태, 모뉴엘 대출 사기사건 등 일련의 대형 금융사고를 거치면서 금융회사와 감독 당국에 대한 불신이 높아짐에 따라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와 처벌의 수위가 비례적으로 강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금융 당국의 검사 태도가 경직되고 금융회사 임직원들의 보신(保身)주의도 한층 더 심해지고 있다.

또, 최근 금융권은 저성장·저금리·고령화로 인해 금융회사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날로 악화하고 있어 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경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족쇄를 풀어줄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상황이다. 특히, 현재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기술금융 확대나 핀테크 기업의 육성을 위해서도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감독 정책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금융 선진국의 경우 이미 경영 건전성 감독 부문은 사후 처벌 위주의 검사 대신에 사전 예방 차원의 컨설팅 중심 감독으로 전환했다. 더 나아가 소비자 피해 분야나 불건전 관행 및 불공정 거래 분야에 감독과 검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감독 쇄신 방안 발표를 계기로 그동안 낙후된 금융산업의 발전을 억눌러온 후진적인 금융감독 관행의 틀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한편, 이번에 발표된 것과 유사한 감독 쇄신 방향이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따라서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감독 규제 완화에 맞춰 금융회사 자체의 리스크 관리 강화와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돼야 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금융 사고는 금융회사의 허술한 내부 통제와 단기 외형적 성과 위주의 보상 시스템에 기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둘째, 감독과 검사를 일선에서 수행하는 직원들의 행태 변화와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 날로 고도화하는 금융 기법을 감독 당국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선진 감독기관에 비해 감독 인력도 절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셋째, 감독기관을 감시하는 금융위원회나 감사원 등 관련 기관의 협조도 중요하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감독기관 직원에 대한 과도한 책임 추궁은 결국은 금융회사에 대한 옐로카드를 남발하게 하는 요인이 됐다.

넷째, 규제가 많으면 결국 감독 당국이 개입할 소지도 많으므로 이번 기회에 내부 경영에 대한 규제는 네거티브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형 금융사고가 날 때마다 원인 규명도 하지 않고 규제와 처벌 위주로 대응하는 행태도 시정돼야 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운용하는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실천 의지가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리고 규제의 문턱을 낮춰 자율성을 강화하면 그에 따른 책임도 그만큼 커진다는 사실을 금융인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쇄신안을 계기로 우리 금융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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