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와 50년을 함께 지내 온 가수 이장희는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 달라는 요청에 어김없이 기타를 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기타와 50년을 함께 지내 온 가수 이장희는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 달라는 요청에 어김없이 기타를 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22일 예술의전당서 콘서트60인조 오케스트라와 호흡… 조원익 등 40년 지기와 한무대

쎄시봉 기억하는 분들 많아… 노래하는 사람으로 행복·영광


“반갑습니다.” 일흔을 눈 앞에 둔 가수 이장희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사진 촬영을 먼저 요청하자 “그럼 기타를 들고 찍는 게 좋겠죠?”라며 익숙하게 기타를 부여잡았다.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노래 한 곡 불러줄 것을 요청하자 “그럽시다, 허허”라고 사람좋게 웃으며 ‘울릉도는 나의 천국’을 불렀다. 마이크와 스피커는 필요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스피커였고, 자신감이 반주였다. 노래 부르는 이장희는 여전히 1970년대 음악 살롱 ‘쎄시봉’에서 활동하던 이장희였다.

“제가 활동을 오래 안 했어요. 1975년부터 3, 4년 정도 했죠. 그게 다예요. 그런데 아직도 기억해주니 그저 고맙죠. 한 30년 동안 노래를 안 불렀어요. 이제는 ‘이 좋은 걸 왜 안 불렀나’ 싶어요.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여전히 가슴이 뛰고 마치 포근한 고향에 돌아와 있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얼굴을 자주 비치면 식상해질 것 같아 고민이에요, 하하.”

이장희는 오는 2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콘서트를 연다. 대중가수들에게는 쉽게 문을 열지 않는 예술의전당이지만 이제는 ‘거장’이라 불리는 이장희를 반가이 맞았다. 추운 겨울이면 미국 LA에서 생활하는 이장희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부랴부랴 귀국하고 연습에 한창이다. 60인조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고 조원익, 강근식 등 40년 지기들과 한 무대도 꾸민다. 테너 엄정행과 신동원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이장희와 함께 부른다.

“예술의전당이 단순히 추억을 공유하거나, ‘노인 우대’ 차원에서 대관을 해준 건 아니겠지요? 그러니 저도 그에 걸맞은 공연을 보여줘야죠. 게다가 40년을 함께한 친구들과 이런 멋진 무대에 서서 음악을 할 수 있다니, 저는 ‘가벼운 흥분’을 느끼고 있어요. 제 공연을 찾는 분들과 노래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장희를 만난 곳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J 하우스’. 주택을 개조해 만든 연습실이었다. 처음에는 이장희가 소유한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평소 이장희를 흠모하던 모 제약 회사 회장이 그에게 제공한 연습실이다. 그만큼 이장희의 노래로 위로받고 그의 노래에 빚을 진 많은 이들이 이장희를 추억하고 있다. 최근에는 1970년대 이장희와 함께 쎄시봉에 모이던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등의 이야기를 다룬 동명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그의 노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이 영화의 정서 전체를 관통한다.

“시사회 때는 초대받았으나 못 갔고 3일 전 친구와 함께 봤어요. 영화 내용은 실제와 다른 허구지만 그 시대의 음악과 분위기를 잘 전달했더군요. 극 중 저를 연기한 진구와 장현성 모두 연기를 참 잘하는 것 같아요. 아주 따뜻하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렇게 쎄시봉을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다니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그저 행복하고 영광이죠.”

쎄시봉 멤버들은 1년에 두어 번 만난다. 미국이나 울릉도에 있던 이장희가 서울에 오면 그들을 모은다. 설 연휴 전에도 만나 회포를 풀 계획이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이장희는 5월 그의 또 다른 보금자리가 있는 울릉도로 들어간다. 자연을 좋아하는 이장희는 더 이상 더덕 농사는 짓지 않지만 정원을 가꾸며 울릉도 라이프를 누린다. 안빈낙도다.

“봄, 가을에는 울릉도로 들어가요. 그때가 가장 아름답죠. 은퇴 후 하와이로 갈 계획도 세웠지만 울릉도를 본 후 ‘여기가 내가 찾던 곳이다’ 싶었어요. 울릉도는 산과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고, 겨우내 눈이 많아 물도 풍부한 곳이죠. 이만한 곳이 어디 있겠어요? 거기서 좋아하는 기타를 치고 있으면 아주 안온해져요. 제가 중2 때 삼촌 친구였던 (조)영남이 형이 툇마루에 앉아 기타를 치던 모습이 멋져서 기타를 잡았는데 아직도 손에서 못 놓고 있어요. 이렇게 때에 따라 이곳저곳 오가고 기타치며 질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합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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