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 머리 자르느라 고생 많았어. 하루 종일 서 있으려면 고단할 텐데 이거라도 마셔.”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낙원동 뉴탑골이발관에서 이발을 끝낸 흰머리 노인이 음료수 한 병을 이발사 권형규(70) 씨에게 건넸다. 권 씨가 괜찮다며 거듭 손사래를 쳤지만, 노인은 권 씨 손에 음료수를 꼭 쥐어 주고 나서야 가게 문을 나섰다.
올해 22년째 ‘종로 뒷골목 이발촌’을 지켜온 권 씨는 “어르신들이 가끔 작은 선물들을 주고 가신다”면서 “한 분은 커피 사 마시라며 주머니 속 동전들을 몽땅 주고 가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권 씨는 “대부분 형편이 넉넉지 못한 분들인데, 그게 다 마음이고 정(情)”이라고 말했다.
20여 개의 작은 이발소들이 거리 곳곳에 자리 잡은 종로 뒷골목 이발촌에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손님들이 유독 많았다. 손님들은 50대 중년부터 100세가 넘은 어르신까지 다양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권 씨가 머리를 깎는 손님은 하루 30∼50명가량. 권 씨를 포함한 직원들은 하루 100여 명의 손님들을 맞이한다. 설을 코앞에 둔 요즘은 밀려드는 손님 때문에 끼니를 챙기기 어려울 정도다.
‘단돈 3500원’에 이발할 수 있다는 게 어르신들의 발길을 붙잡는 가장 큰 이유지만 사람들이 수십 년째 이곳 이발촌을 찾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듯했다.
이날 염색약을 바른 채 이발소 안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어르신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마주 앉은 손님과 안부를 나눴다. “그때 말한 딸내미 직장은 어떻게 됐어…” 등으로 시작된 어르신들의 수다는 자식들 이야기에서 보릿고개 설움까지 끝날 줄을 몰랐다.
이발소에서 기자가 만난 60년 지기 친구 홍한영(78) 할아버지와 배경인(79) 할아버지는 이곳 이발촌이 ‘만남의광장’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홍 할아버지는 “수십 년을 동고동락한 둘도 없는 친구와 한 달에 한 번 꼭 이발소에서 만난다”고 말했다. 배 할아버지는 “노인들에게 이곳 이발소는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곳이 아니라 정을 나누는 곳”이라면서 흐뭇해했다. 권 씨는 “매번 비슷한 날에 찾아오던 단골손님이 보이지 않을 때는 십중팔구 세상을 뜬 것”이라며 “손님과 이발사로 만났지만, 슬픈 소식을 접할 때는 오랜 친구를 잃은 것처럼 가슴이 아리다”고 말했다. 설을 앞둔 20㎡(6평) 남짓 작은 이발소 안, 오고 가는 소소한 이야기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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