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5월 러시아 전승(戰勝) 행사 참석 여부에 대한 정부의 고뇌가 길어지고 있다. 사실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 참석하고 싶은 마음부터 선뜻 내키지는 않는다. 일제의 패망을 앞당겼으니 그 승전을 굳이 폄훼할 수는 없을지라도 구 소련군이 그로써 여유를 얻어 우리를 분단의 질곡(桎梏)에 빠뜨렸음을 생각하면 ‘우리가 무슨 경축까지?’ 싶은 것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대규모 무장행사를 벌이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저의도 생각해 봐야 한다. 내심 크림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경제제재 중인 미국과 그 동맹국에 대한 경고요, 주변 친서방국들에 대한 압박이라는 것 아닌가? 강대국의 팽창주의를 누구보다 경계해야 할 우리가 크림 반도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로 뻗어가는 푸틴의 야심에 오불관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옳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더욱이 지금은 일시 정전(停戰)이 합의됐지만, 많은 전문가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우크라이나 사태는 갈수록 격해질 것이라는데, 자칫 우리가 러시아를 위해 그 소용돌이를 찾아드는 것처럼 비치지는 않을까? 그러잖아도 미국 측에서는 ‘한국이 대(對)러시아 제재에 구멍을 내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의구심이 흘러나온다는데.
게다가 집권 초기 우리의 초청은 온갖 핑계로 미루다가 평양을 먼저 들른 뒤에야 서울을 찾았던 푸틴이다. 그러고는 ‘한반도 자유통일을 통해 얻을 것은 많아도 잃을 것은 하나도 없다’던 러시아를 ‘100억 달러의 북한 국채를 탕감해주고 벌목공 임금이라며 막대한 현금에다 유류까지 지원하는 등 김정은 체제의 새 생명선으로 부상하는 오늘의 러시아’로 돌려세웠다. 구 소련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푸틴이 북한을 동진(東進)정책의 거점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대통령이 가도 자칫 김정은의 들러리만 서게 될 뿐, 의미 있는 방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번 러시아 행사에 참석하면 ‘9월 3일 중국의 톈안먼 열병식(天安門 閱兵式)도 외면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정부의 고민거리라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일본을 직접 겨냥한 행사라는 점도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불과 60여 년 전 우리는 중국군의 침략으로 자유통일의 기회를 잃고 수백만의 국민과 국군이 피를 흘렸고 중국은 사과 한마디 한 적 없다. 다른 행사라면 몰라도 중국군의 열병식에 한국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것은 아직은 너무 이르다. 호국영령에게 죄송스러울 수도 있고, 동북아의 긴장은 지금도 진행 중인데 우리 동맹국의 오해와 불신이나 사지 않겠는가?
남북정상의 만남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정은의 참석도 아직은 불명확한 데다 저들은 남북회담에 여전히 턱없는 전제조건부터 내세우고 있다. 지금은 만남에 너무 급급하기보다는 의연한 원칙의 고수가 남북관계를 주도하는 더 지혜로운 접근법일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존경받는 어느 원로 언론인의 우려대로 지난해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 때처럼 만약 푸틴의 좌우에 박 대통령과 김정은이가 앉는 모양새라도 만들어진다면 박 대통령의 모습은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 봐도 박 대통령의 오는 5월 러시아 전승 행사 참석은 불필요한 모험이다. 현대 국제질서의 대의(大義)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득(得)보다는 실(失)이 훨씬 더 커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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