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전자입찰시스템을 괸리하는 한전KDN으로부터 재위탁을 의뢰받아 관리하던 민간업체 직원들이 전산 조작 등을 통해 공사업체들에게 불법으로 낙찰받도록 해주고 거액의 금품을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 4명이 최근 10여년간 불법으로 낙찰받게 한 공사는 133건( 계약금액 2709억원), 그 대가로 챙긴 돈은 13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개요=광주지검 특수부(부장검사 김종범)는 16일 청사 5층 회의실에서 ‘한전 전산조작 입찰비리’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한전 전자입찰시스템 서버에 접속, 공사 낙찰가를 알아내거나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특정 공사업체가 낙찰받을 수 있도록 한 뒤 해당 업체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아 챙겨 온 혐의(배임수재 등)로 박모(40)씨 등 서버 관리업체 전·현직 직원 4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공사업자들을 모집, 이들에게 연결해 준 전기공사업자 주모(40)씨 등 2명을 배임증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박씨 등 4명은 2005년 9월께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한전KDN 전산입찰시스템을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불법 낙찰을 주도, 지난 10년 간 공사업자들로부터 134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주씨 등은 같은 기간 불법 낙찰에 참여할 공사업체를 모집하는가 하면 낙찰 대가로 받은 금품을 박씨 등에게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10여년 전 취업 준비 과정에서 만나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던 박씨와 주씨가 해당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한전의 전산시스템을 관리하는 한전KDN으로부터 재위탁을 받아 서버를 관리하는 업체로부터 파견된 직원들이다.

◇불법 조작 대규모=검찰 조사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불법 낙찰공사는 전국에 걸쳐 83개 전기공사업체 총 133건(계약금액 기준 2709억원 상당), 입찰 경쟁률은 최고 5736대1, 개별 계약금액은 최고 77억원에 달했다. 박씨 등은 외부에서도 한전 입찰시스템 서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업체들의 투찰정보를 분석하는가 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업체가 낙찰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조작해 왔다. 이들은 한전KDN과 계약이 만료돼 더이상 근무할 수 없게 될 경우 후임자를 물색, 수법을 전수하는 방법으로 범행을 이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 일부는 직접 전기공사업체를 인수, 스스로 불법 낙찰을 받기도 했다.
 
이들이 공사업자들로부터 받은 대가성 돈은 134억원에 달한다. 공범 정모(35·프로그램팀)씨의 집 대형금고에서는 수십개의 오만원권(4억1000여만원) 다발이, 이모(39)씨의 사무실에서는 현금을 묶는 띠지가 대량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은 또 범죄수익을 통해 고급 아파트, 외제차, 35세대 이상의 오피스텔 등을 이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이들은 불법 낙찰 받은 공사업자들로부터 공사대금의 1∼10% 상당을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초기에는 공사대금의 1%를 받다가 확률이 높아지자 10%까지 올려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수법도 치밀=이들의 범행수법을 이해하려면 우선 한전의 전자입찰시스템을 살펴봐야 한다. 한전은 각종 전기공사 중 적격심사제 방식에 따른 전자입찰에서 기초금액과 예비가격 범위(±2.5%) 등 기본 사항을 적어 공고한다. 투찰 마감 하루 전 오후 4시쯤 기초금액의 ±2.5% 범위에서 1365개의 예비가격을 만들어 이 가운데 15개를 임의로 선택, 암호화한 뒤 15개 추첨번호에 하나씩 배정한다. 입찰자는 15개 중 4개의 추첨번호를 선택하고 입찰자가 가장 많이 선택한 추첨번호 4개에 배정된 예가의 평균을 내 공사 예정가격을 산출한 뒤 투찰률(공사액 10억원 미만 87.745%, 10억~30억원 86.745%)을 곱한 낙찰 하한가를 산정한다. 낙찰 하한가와 가장 근접한 바로 위의 투찰가를 입력한 입찰자가 최종 낙찰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박 씨 등은 15개 추첨번호를 무작위가 아니라 정해진 순서대로 배정되도록 순열을 조정했다. 2주 이상 진행되는 입찰기간 업체들이 선택하는 추첨번호 4개도 실시간으로 파악해 낙찰 하한가를 예측했다. 이들은 특히 ‘예측 프로그램’뿐 아니라 외부에서 실시간으로 한전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파일도 개발했다.

◇한전 “재발방지”=한전은 이날 검찰의 중간 수사 발표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밝혔다. 또 재위탁업체 작업자의 시스템 접근을 차단하는 등 현행 전산입찰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손보겠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한전KDN의 현행 전산시스템 위탁 제도 전면 재검토, 한전KDN 일부 수의계약 업무의 경쟁입찰 전환, 실시간 감시체계 구축, 전사 시스템에 대한 비인가자 접근 봉쇄를 위한 보안통제 강화 등의 개선책도 제시했다.또 수사결과에 따라 한전KDN과 KDN 재위탁업체 등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전은 다만 “입찰시스템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KDN 재위탁업체 작업자의 작업 내용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한 당일인 지난 1월30일 광주지검에 수사의뢰를 했다”며 “이후 전산입찰시스템 삭제 의심 프로그램 복원 등 검찰의 관련 수사에 적극 협조해 왔다”고 밝혔다. 이번 입찰 조작과 관련한 비위 행위를 밝히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는 해명이다.

광주=정우천 기자 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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