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적 문체로 그린 ‘인간 이순신’
칼의 노래 / 김훈·문학동네
설명이 필요없는 스테디셀러. 1인칭 서술자인 이순신이 정유년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듬해 11월까지의 사건을 풀어낸다. 출간 당시 영웅이 아닌 고독하고 불안한 인간 이순신을 그렸다는 평을 받았는데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작가의 남성적 문체, 비극적 비장미가 더해진다. 2001년 ‘생각의 나무’에서 나와 2007년에 이미 100만 부를 돌파했고, 2012년 문학동네로 옮긴 뒤에도 10만 부 이상 팔렸다. 지난해 영화 ‘명량’ 특수를 누렸듯 소설 자체의 힘에 위기의 순간마다 리더십의 원형으로 호출되는 충무공의 존재감이 결합해, 유명작가의 신작이 격돌하는 소설시장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07년 한국소설 1위, 지난해엔 종합 81위에 올랐다.
시대 넘나드는 ‘치유의 詩’ 모음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류시화·오래된 미래
‘힐링 포엠’을 내건 시인의 ‘엮은 시집’이지만 2008년 단 한해만 제외하고 시 분야 1위를 지켰다. 2008년은 소설가 박경리가 세상을 떠난 해로, 그해엔 그의 유고시집이 1위였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서기관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자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유명·무명 시인들의 치유 시가 묶여 있다. 담당 편집자는 “엮은 시집이지만 시인의 천재적인 언어 감각, 시에 대한 공부 자세 등이 녹아들어 선택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84만 부가 팔려나갔다.
사랑에 대한 사유 … 11년 ‘베스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청미래
한국인이 좋아하는 작가의 연애 소설. 1990년대 초에 나왔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 2004년 TV 책 프로그램에 작가가 출연, 붐이 일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11년 동안 2007년 한 해만 빼고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00위를 벗어난 적이 없다. 1인칭 화자인 주인공이 연인과 운명적으로 만나는 것에서 시작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사랑 자체에 초점을 맞춰 풀어냈다. 아리스토텔레스, 비트겐슈타인, 마르크스에 역사와 종교까지 동원해 첫 키스, 섹스, 다툼, 이별, 불안, 상심 등 사랑하는 이들이 거치는 국면과 감정들을 관찰해낸다. 2002년 청미래가 소설을 재출간한 뒤 49만 부가량 판매됐다. 사랑에 대한 관찰과 사유. 사랑이 궁금한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유 꿈꾸는 ‘현대인의 로망’ 담아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열린책들
빛나는 스테디셀러인 고전. ‘그리스인 조르바’는 최근 몇 년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세계문학 고전이다. 2012년 문화평론가 김정운이 이를 읽고 대학에 사표를 던진 ‘사건’으로 일약 유명세를 탔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와 있지만 소설가 이윤기 번역의 열린책들 판본이 정본이다. 2009년 출간 이후 38만 부가 나갔으니, 매년 4만∼5만 부씩 팔린 셈이다. “자유 없이는 단 1초도 살 수 없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자유인 조르바. 강무성 열린책들 주간은 “현대인에게 자유 영혼 조르바는 로망이며, 책의 인기는 우리들이 조르바처럼 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고 말했다.
창조적인 인물들의 발상법 정리
생각의 탄생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에코의 서재
판매량만 보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대형 베스트셀러가 있지만 ‘인문’에서 이 책만큼 오래, 꾸준히 사랑받은 책도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피카소, 제인 구달, 마사 그레이엄 등 여러 분야의 창조적인 사람들의 발상법을 생각의 단계별로 정리했다. 15만 부가량 팔려나갔다. 조영희 에코의 서재 대표는 “창의적 사고 관련 책들이 대부분 스킬 위주의 전략서인 시장에서 전문가들이 묵직하게 지식을 전달해 호평을 받았고, 여전히 대체할만한 책이 없다”고 말했다. 처음엔 성인 직장인 독자가 많았지만, 점점 연령대가 낮아져 지금은 고등학생들도 읽고 있다고 한다.
인종간 격차는 지리·환경의 차이
총·균·쇠 / 제레드 다이아몬드·문학사상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의 저작. 뉴기니와 유럽의 격차를 낳은 것은 인종 같은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지리적·생태학적 환경의 차이라는 주장이 핵심. 저자는 개인의 인지 능력에선 유럽 백인보다 뉴기니인들이 낫다면 진화생물학·유전학·언어학·고고학 등 인문과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환경적 요인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1998년 출간 당시 주목받지 못했지만 꾸준히 독자들을 늘려가 2009년부터 역사·문화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12년 서울대 도서관 대출 순위 1위라는 뉴스와 함께 급상승했다. 2014년엔 종합 25위까지 올랐다.
아들에게 말해주는 빈곤과 양극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갈라파고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가 아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기아 실태와 원인을 설명한 책이다. 2007년 국내 출간되자마자 사회·정치 부문 베스트에 올라 줄곧 1~3위에 머물고 있으며 지금까지 30만 부정도 팔렸다. 빈곤과 양극화 등이 중요한 이슈인 현실에서 여전히 ‘문제적’인 책이다. 갈라파고스 측은 “장 지글러의 글이 쉽고, 대화체여서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빈곤 문제를 설명해준다”며 “최근엔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읽을 정도로 독자층이 넓다”고 했다.
장하준이 말하는 세계화의 진실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부키
경영전략이든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논란이든 경제·경영은 끝없이 화제의 저작이 나오는 분야로 은근히 스테디셀러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2007년 출간 이후 줄곧 베스트셀러 목록을 지키며 60만 부가량 팔린 이 책의 선전은 주목할 만하다. 부의 생성 과정 등을 살피며 ‘세계화’와 ‘개방’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 인기저자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책은 대부분 베스트셀러로 나와 스테디셀러로 안착하는 패턴.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2010)도 50여 만 부가 나갔고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2014)는 현재 이 분야 베스트셀러 1위다.
유전자 단위로 설명하는 ‘진화’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을유
과학 분야의 대표적 스테디셀러. 2007년 이후 최근까지 교양과학 부문 1위 자리를 놓지 않은 책. 1990년대 초 국내에 소개됐는데, 을유가 2010년 30주년 기념 개정판을 새로 출간한 이후 15만 부가량이 나갔다.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로 바라보며 진화를 설명한 책으로 을유출판사 편집자는 “진화론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2000년대 생물학의 인기와 함께 관심을 받게 됐다”며 “논쟁적 저자 도킨스도 책이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연서같은 시인의 ‘낭만 여행기’
끌림 / 이병률·달
여행서의 개념을 바꾼 책으로 2005년 출간 이후 80만 부가량 판매된 여행 베스트·스테디셀러. 시인 이병률이 1994년부터 2005년 초까지 50여 개국, 200여 도시를 돌며 남긴 순간순간의 기록으로 기존의 실용 가이드에서 벗어나 화제가 됐다. 여행지에서 보낸 시인의 연서를 읽는 듯한 책은 이후 여행서 전체의 변화를 가져왔다. 독자는 10대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매년 여행 부문 1~3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속편 격인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도 지난해와 올해 여행서 부문 1위를 지키고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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