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담배 피우고 폭음… 어찌 병원이 두렵지 않겠는가
아내는 병원 안 가면 이혼수속 밟자고 하고…
아내도 덩달아 진단을 받기로 했다
어렵지 않은 검사들이었다… “우리 내년에도 꼭 받자”
그(45세)의 몸무게가 한 달 사이에 10킬로그램이 줄었다. 불룩 솟았던 배가 쏙 들어갔고 얼굴은 반으로 줄어든 것처럼 보였고 꽉 끼던 청바지가 헐렁헐렁했다. 가벼운 운동조차 등한시했고 살 빼는 약도 먹지 않았는데 그처럼 놀라운 감량에 성공했다. 그는 칭찬받지 못했다.
아내(43세)로부터 “우리 남편이 갑자기 살이 빠졌는데…” 소리를 들은 사람마다 빨리 병원에 데려가라고 했다. 아내는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체중감량이 한국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공포인지. 아내는 날마다 병원에 가자고 성화했다. 주삿바늘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그는 막무가내 버텼다.
초등학생인 그의 아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니까 요새 만날 부부싸움 한 게 아빠 병원 가기 싫어서 그런 거야?”
“아빠는 피 뽑는 게 무섭다고.”
“아빠는 언제 철드냐.”
“너도 알지? 엄마가 만날 뱃살 빼라고 했던 거. 그 뱃살 쏙 빠졌으니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지 난데없이 웬 병원이냐고.”
“엄마가 참 안 됐어. 이런 남자랑 어떻게 사냐?”
아내는 비상수단을 썼다. 시골 부모님께 알린 것이다.
안골댁(69세)은 하늘이 노래졌다. 아들의 살이 빠졌다는 소리가 청천벽력처럼 들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던가. 문득 암 환자가 되어 고생길에 접어들었던 이들이 한둘인가. 고생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하늘로 바삐 가버린 이들이 한둘인가.
“그 사람들 공통점이 무엇이었냐. 갑자기 살이 빠졌던 것이여. 별일 없어야겠지만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한다.”
며느리에게 신신당부하고, 아들에게도 전화 걸어 야단쳤다.
“마흔댓 살이나 먹은 아들한테 다 늙은 어미가 병원 가라고 해서 미안하다. 근디 안 가면 엄마 볼 생각 말아.”
김 씨(75세)도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씨는 아들하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아들의 말은 벅벅대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아내 말로는 아직도 아버지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란다. 기가 막힌 얘기다. 내가 뭘 어쨌다고. 반대로 며느리와는 말이 잘 통했다. 며느리는 제 주견도 확실했고 말도 또박또박 잘했다. 어떤 때는 며느리가 딸 같고 아들이 사위 같았다.
“네가 애를 좀 써야겠다. 밧줄로 묶어서라도 끌고 가라.”
그는 경악했다. 아내한테 시비를 걸었다.
“왜 시골에 알려서 이 난리법석을 피워. 그분들은 자식들 걱정할까 봐 비밀 유지에 최선을 다하시는데, 그깟 살 빠진 걸로 엄마 아버지한테 큰 걱정을 끼치다니, 이런 불효가 어디 있나.”
쓰쓰가무시병에 걸렸을 때도, 독사에게 물려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보름이나 입원했을 때도 어버이는 철통보안과 뛰어난 통화 연기력으로 자식들이 모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자꾸 안 간다고 하니까 그렇지. 자기가 내 말은 안 들어도 어머님 아버님 말은 듣잖아. 한심하다. 어린애도 아니고.”
“우리 엄마 잠 다 주무셨어. 별거 아닌 걱정거리로도 전전반측하시는 분인데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실까.”
“효자 났네, 효자 났어.”
안골댁은 불당으로 달려갔다. 평생 모셔온 부처님과 신령님께 우리 아들 별일 없게 해달라고 비손했다. 아들은 평생 큰 수술 한 번 없이 살았다. 병원에 거의 안 가고도 무탈했다. 자신은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고 살았다. 자신에게 그토록 가혹했으니 그분들이 자식은 봐주신 거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게 더 두려운 것이었다. 이제까지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 무슨 일이 있을 나이가 되었다는 것.
안골댁이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직도 안 갔다는 것이다.
“어미 말이 우습냐?”
“아범이 말을 안 들어요.”
“내일 아침에 당장 가라. 내일도 안 가면 이 어미가 올라갈 거라고 전해라. 진짜로 올라갈 겨! 네가 못 끌고 가면 나라도 끌고 갈 겨.”
그는 왜 그렇게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것일까? 실제로 무슨 병에라도 걸렸을까 봐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일 수도 있었다. 수많은 인생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불쑥 병이 발각되어 기나긴 수술의 과정을 거치고 가계는 풍비박산이 나고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니까 더더욱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이성적인 인간이겠으나, 갑작스레 병이 발견되었던 인생 선배들처럼 그 역시 비이성적으로 병원을 두려워하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직접 올라오겠다고 하고, 아내는 내일도 안 가면 이혼 수속 밟자고 하고, 아들은 아빠 병원에 안 가면 자기는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니 그는 더는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병원에 가야만 한다! 그러자 수많은 인생선배와 같은 황당한 일을 겪을까 봐 벌벌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을 두려워하는 가장들의 공통점이 있다. 가족이 하지 말라는 것을 청개구리 아이처럼 해왔다는 것이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아내와 아이가 공통적으로 끝없이 되풀이하는 말이 있었다.
“담배 끊어라. 술 줄여라. 운동 좀 해라.”
이 세 가지를 실천하며 사는 가장들은 병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청개구리처럼 담배를 피워왔고 폭음해왔으며 운동은커녕 걷는 것도 싫어했다. 어찌 병원이 두렵지 않겠는가.
아들이 전쟁에 나가는 아빠 배웅하듯 했다.
“떨지 말고 잘하고 와요. 피 뽑는 거 아무것도 아녜요. 따끔하고 만다고. 이참에 헌혈도 하지 그래요?”
아내도 덩달아 진단을 받기로 했다.
“고마워, 당신 덕분에 나도 진단을 받아보네.”
“자기도 한 번도 안 받아봤어?”
“응. 우리가 나라에 충성을 너무 많이 했네. 보험료만 꼬박꼬박 내고 혜택은 못 찾아먹었으니. 앞으로는 2년에 한 번씩 꼭 받자. 손 꼭 붙잡고.”
“나 너무 떨려. 뭐라도 있으면 어떡하지?”
“없애면 되지.”
“자기는 좋겠네.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고 겁날 게 없잖아.”
“운동 부족이라 나도 겁나.”
걱정한 게 수치스러울 만큼 어렵지 않은 검사들이었다. 복부 초음파 검사 때는 즉시 알려주었다. 폐도 이상이 없고 쓸개에 혹이 있기는 하나 작아서 걱정할 필요는 없고. 다만 위내시경 때는 괴롭고 힘들었다. 위염이라고 했다. 일주일 뒤에 검사한 대장도 별문제가 없었다. 그가 폭주하고 지독히 매운 것을 먹을 때마다 피를 뿜었던 치질도 굳이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해보길 잘했네. 고마워, 여보. 다 자기 덕분이야.”
자궁 쪽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은 아내가 말했다.
“그래, 우리 내년에도 꼭 하자. 의료보험료 낸 보람을 처음 느껴본다. 근데 나 아프면 간호 잘 해줄 거지?”
“간호 못 해주니까 아프지 마.”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걱정 많이 하셨죠? 아무것도 아니래요. 괜히 걱정만 끼쳐드렸어요. 우리가 입이 가벼워서.”
안골댁은 비로소 발을 뻗고 잘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걱정거리를 만들고 키우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모성은 편히 쉬려고 하지 않았다. 김 씨는 팔순이 보이는 나이에 쉰 살 가까운 자식의 건강을 염려했다는 게 참 어이가 없었지만 아무튼 별거 없다니 밥맛이 좋았다.
아들이 물었다.
“근데 아빠 몸무게는 도대체 왜 줄어든 거야?”
그가 능청을 떨었다.
“너 때문이지. 네가 말을 안 들으니 어찌 스트레스가 안 쌓이겠냐?”
“부모님들은 참 좋겠어. 무슨 문제가 생기면 다 자식 때문이라고 우기면 되니까.”
“그러니까 말 잘 들으란 말이야.”
“아빠나 엄마 말 잘 들으셔. 끊고 줄이고 하시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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