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영 /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미국과 쿠바의 실용주의적 관계 정상화 추진을 보노라면, 자연히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쿠바와 북한 모두 오랜 기간 미국과 고도의 적대 관계를 유지해 온 사회주의 국가인데, 미국과 쿠바가 54년의 관계 단절을 넘어 오는 4월까지 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미·쿠바 관계 정상화에는 관타나모 미군기지 반환,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이민 등 해결해야 할 장애들이 있으나, 관광·송금·교역 등은 곧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 상원은 쿠바에 대한 ‘금수해제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한국 외교부는 미·쿠바 관계 정상화 추진을 환영하며, “북한도 올바른 선택을 통해 국제사회의 변화와 흐름에 적극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미국과 숙명적 적대 관계인 북한은 카스트로의 대미 투쟁과 도전을 적극 지지·성원해 왔다. 1959년 1월 1일 카스트로는 9000명 규모의 무장력으로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축출했고, 1960년에는 모든 미국 기업을 무상으로 국유화했다. 미국은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끊고 금수 조치로 응징했다. 미국은 1961년 4월 쿠바 망명인 1500명 정도를 동원해 쿠바를 침공했으나, 결과는 1000명 이상이 포로가 되는 참담한 실패였다. 그해 말 카스트로는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임을 선포하고, 소련과의 유대를 강화했다. 1962년 10월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소 관계를 핵전쟁 일보 전까지 몰고 갔다. 그해 12월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5차 전원회의는 “제국주의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며, 평화는 구걸이 아닌 확고한 투쟁을 통해서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미·쿠바 국교 정상화 추진으로 매우 난처하게 됐다. 조속한 한·쿠바 수교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우려할 것이 자명하다. 사회주의 맹방 쿠바마저 떠나면, 미국과 대적하는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는 북한뿐으로, 한국과의 경쟁에서도 밀리는 형세가 되고 만다. 김정은 정권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개혁 및 실용주의 노선을 역전시킬 만한 능력이나 수단이 없다. 한·쿠바 관계 정상화 추진 저지나 지연을 시도하겠지만, 북한의 경제적·외교적 압력 수단이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미국에 앞서 베트남과의 수교를 추진하던 시절, 한국은 미국의 베트남 정책과 입장을 살펴야 했다.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는 미국을 따라가거나 도움을 받으며 추진할 수 있는 이점과 차이점이 있다. 지난 10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외교 지평을 넓히겠다며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쿠바의 반응과 기대는 호의적이고 긍정적이다. 상호 협력을 필요로 하며 다차원적으로 생산적 관계를 이룩할 수 있는 한·쿠바 양국은 관계 정상화를 위해 조기(早期)에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미·쿠바 관계 및 한·쿠바 관계 정상화 추진이 마지막 주자 북한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속적인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에 대한 적대정책은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며, 북한의 경제난 해결을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점이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 전환을 비난했던 북한이 쿠바마저 비난할 게 아니라, 환경 변화에 민감하고 현명하게 적응해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등 생존과 발전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쿠바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계속 시간을 잃는다면, 북한과 남북관계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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