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 논설실장

설 연휴가 끝나면서 봄의 초입에 접어들고 있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는 퍼시 셸리의 시문처럼 봄은 희망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임기가 2월 25일, 늘 봄과 함께 시작되는 것은 우연이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틀 뒤면 취임 2주년을 맞는다. 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시작해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어 갑시다”로 끝났다. 지난해 취임 1주년 담화문의 마무리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으로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였다.

그러나 이런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최근 ‘박근혜정부 2년 정책모음’ 책자까지 발간하며 자화자찬했지만, 국민 눈높이에서는 허송세월로 비친다. 여론조사에서 국정 긍정평가는 30%대로 급락했고, 전문가들도 수우미양가 척도의 ‘미’로 평가했다. 취임 첫해엔 온갖 인사 파동과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 지난해엔 세월호 참사와 문건 파문이 불거졌다. 정책 혼선이 속출하더니 급기야 담뱃값을 올려놓고 ‘저가 담배’를 공급하자는 블랙코미디까지 여당에서 나왔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일 정도가 역사에 남을 것이다.

올해는 박 대통령의 임기 한가운데이고, 전국 단위 선거가 없어 국정개혁의 골든타임이다. 박 대통령도 신년회견에서 공공·노동·금융·교육의 4대 구조개혁 방침을 밝히면서 공공 개혁이 모든 개혁의 시작이라고 했다. 올바른 접근이다. 공공부문이 솔선(率先)하지 않으면서 다른 분야의 개혁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 첫 단추인 공무원연금 개혁이 올봄에 결정된다.

여야 정치권은 국회에 공무원연금개혁특위를 구성하고, 5월 초까지 관련법을 처리한다는 데 합의해 놓고 있다. 이런 일정에 맞춰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강력한 춘투(春鬪)를 예고했다. 전·현 공무원들의 연금혜택을 줄이는 개혁은 그 자체로 결코 녹록하지 않다. 게다가 사학·군인연금 개혁과도 연결된다. 노동·금융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폭발력이 엄청나다. 전공노·민노총을 넘어 법외 노조에 몰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진당 해산으로 결정타를 맞은 종북(從北)세력까지 정권퇴진 등을 외치며 가담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한가운데에 4·29 재·보선이 딱 버티고 있다. 최근 여야 모두 새 지도부가 들어섰다. 전국 규모 선거는 아니지만 이들의 리더십, 1년 뒤 총선과 대선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무조건 승리하려 할 것이다. 다시 포퓰리즘 바람이 불고, 개혁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 정년 연장법 시행에 따른 청년 취업난 악화는 또 다른 뇌관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와 내각이 비장한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개혁 동력(動力)을 만들 수 없다. 불행히도 현재로선 그런 조짐을 발견하기 어렵다. 내각에는 이완구 총리 등 6명(후보 2명 포함)이 국회의원 겸직자들이다.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1년도 못 되는 시한부 내각이다. 이미 개혁의 총대를 메기보다 자기 정치에 연연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게다가 청와대는 개혁 무풍지대다. 수석비서관 중에는 어떻게 그 자리에 있는지 의심스러운 인사도 있다. 과도하게 큰 조직에 직급 인플레까지 있는 청와대에 ‘특보단’을 신설했다. 공기업 개혁을 주장하면서 ‘낙하산’은 계속 내려보낸다.

공직자들은 엘리트 집단이다. 5년 임기의 정권, 1년 남짓 있다가 떠날 장관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도 잘 안다. 이들의 연금을 깎고, 재취업을 제한하고, ‘김영란법’으로 규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공직자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개혁은 연목구어다. 우선 박 대통령부터 진솔해야 한다. 국민에게는 왜 복지를 재설계해야 하고, 공직사회에는 왜 개혁의 고통을 앞서 감내해야 하는지 납득시켜야 한다. 정치는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겸직 장관들은 의원직을 버리는 자기희생의 감동이라도 연출해야 한다. 그다음에 국민에게 허리띠 졸라매기를 요구해야 한다. 이처럼 정권의 솔선수범은 개혁 성공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럼에도 나는 ‘바담풍(風)’할 테니 너는 ‘바람풍’하라는 식으로 역행하는 모습뿐이다. 지난 2년 박 정권은 국민 기대에 못 미쳤다. 이대로 가면 다가오는 봄엔 더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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