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구 총리가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한 뒤 임명장을 수여한 박근혜 대통령은 4명의 장관급 인사를 발표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완구 내각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번에 유기준, 유일호 두 의원이 내각에 합류함으로써 모두 6명의 새누리당 의원이 내각에 포함되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른바 권력 융합에 관한 문제다. 대통령제에서는 권력 분립에 입각한 견제와 균형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게 아니라, 입법부의 다수당이 행정부마저 지배하게 되는 권력 융합이 일어나게 된다. 물론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입법부의 다수당이 행정부를 장악함으로써 권력 융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내각제는 총리의 임기가 규정돼 있지 않아 권력 융합의 부작용, 그러니까 권력의 독주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권력이 즉각 교체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으로 보장돼 있기 때문에, 권력 융합에 의한 권력 독주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지금의 기현상으로 내각제의 단점과 대통령제의 단점이 어우러져 제왕적 대통령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 정권 때에도 국회의원들의 내각 진출은 있어 왔다. 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 모두 11명 정도의 의원이 내각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처럼 동시에 6명이나 되는 의원이 내각을 차지했던 적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은 앞서 지적한 문제점 말고 또 다른 문제도 초래한다. 바로 지금 내각은 고작 1년 정도 유지되는 ‘시한부 내각’이라는 말이다. 올해 말부터는 총선 모드에 돌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 정권은 내년 초에 대거 새 장관을 임명해야 할 텐데, 이런 상황은 국정 운영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거 내각을 장악하게 된 이유가, 하려는 일들을 집권 3년 차에 밀어붙이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기껏 1년 밀어붙이다 총선 직전에 잇단 청문회 때문에 오히려 총선 패배나 정권 차원의 위기마저 초래하게 생겼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 대표성마저, 일부 지역은 상실하게 생겼다. 결국 1년짜리 내각을 출범시켜 1년 후의 정국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분적으로 훼손하고, 또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단점을 결합해 부작용만 초래하게 한 것이 이번 개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완구 총리 내각의 과제 운운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일단 이완구 내각은 새로운 사안을 추진하려 하기보다는 현 정국을 수습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경제 활성화라는, 거창하지만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없는 명제 말고, ‘증세 없는 복지’ 따위의 허구를 과감하게 벗어던져, 좀더 솔직한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의 요구에 즉각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과거처럼 총리 교체 요구가 빗발칠 때는 가만히 있다가 한참 뒤에 바꾼다든지, 비서실장 교체 요구에 묵묵부답하다가 잊을 만하니까 바꾸는 이런 식의 국정 운영을 탈피하라는 말이다. 이런 것들은 업적은 아닐 수 있지만 가장 필요한 것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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