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44)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됐다. 당시 김 장관은 최연소 국회의원이었다. 김 장관의 공천 과정에서도 ‘파격’이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김 장관은 공천을 신청할 때만 해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여성 당직자였다. 그의 경쟁자는 현역 의원이었다. 김 장관은 현역 의원과의 경쟁에서 승리, 공천을 따냈다. 그리고 17대 최연소로 국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7대 국회에서만 해도 김 장관은 ‘잘나가는’ 초선 의원이었다. 원내 부대표, 한나라당 부산시당 대변인 등을 맡으며 탄탄대로를 걸어갔다. 그리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캠프에 참여하면서 순탄한 정치인생을 걸어갔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8년 총선에서 ‘친박연대’ 바람이 부산에도 불었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도 부산 연제구에서 친박연대 후보에게 졌다. 그는 1년 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한국인터넷진흥원장으로 부임했다. 여성으로는 최연소 정부 산하 기관장이었다. 1년 뒤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대변인도 맡았다. 2012년 4월 총선에 그의 공천을 장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親)이명박계인 데다 지역구 현역의원은 당을 장악한 친박근혜계였다.

그러나 그는 공천을 따냈고 19대 국회에 다시 입성했다. 그는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패가망신한다지만 ‘패자부활’과 ‘절도봉주’(끊어진 길에서 배를 만나 위기를 넘긴다)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려움 속에서 긍정을 잊지 않는 정치인인 것이다.

김 장관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지도 교수는 신입생인 그를 불렀다. 김 장관이 장래 희망으로 ‘정치인’이라고 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이 외무고시 등 각종 고시를 준비하겠다거나 공부를 더 해 교수를 하겠다고 했지만 김 장관만 ‘정치인’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인’의 꿈은 중·고교생 때부터 가져온 것이라고 말한다. 김 장관은 이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졸업한 뒤 1995년 당시 민주자유당 공채 당직자로 들어갔다. ‘정치인’ 김희정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신선종 기자 hanuli@munhwa.com

관련기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