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서울에 다시 나타났나 하고 국민은 귀를 의심하고 있다. 2월 초 한·중 국방장관회의차 서울을 방문해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국 배치에 반대하면서 노골적으로 한국 안보 문제에 개입한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국방장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위안스카이는 누구인가? 그는 임오군란 직후 3000명의 청나라 군대를 조선으로 끌고 들어와서 대원군(大院君)을 중국으로 납치해가고 조선 내정에 사사건건 개입한 인물이다. 이런 청나라의 개입은 결국 청일전쟁의 빌미를 제공했고 한반도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최근 사드 문제를 두고 중국의 국방부장뿐만 아니라 중국 고위 관리들의 한국 안보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은 위안스카이의 행태를 연상시켜 국민의 안보(安保)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매우 부적절한 외교적 행태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대응은 국민의 안보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주한미군을 보호하고 우리 군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용 첨단 무기인 사드를 배치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미국의 이런 조치에 적극적으로 찬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정부는 사드 문제에 대해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전략의 부재’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중국의 눈치만 보면서 모호한 입장을 취할 게 아니라, 중국에 한국의 안보 문제에 ‘배 놔라, 밤 놔라’ 하며 내정간섭을 하기 전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요구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 이후 중동에 집중된 미국 대외정책의 불균형 상태를 바로잡고 중국의 부상에 대비하기 위해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재균형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사드의 배치는 ‘오바마 독트린’으로 불리는 미국의 새로운 대(對)아시아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할 것이다. 과거 미국은 ‘닉슨 독트린’을 통해 아시아에서 발을 빼려고 했다. 이와 달리 재균형 전략은 미국의 대아시아 안보공약을 더욱 공고히 하고 한·미 동맹을 강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국익(國益)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정부의 모호한 태도를 보면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전략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사드 문제를, 단순히 새로운 무기 체제의 배치가 아니라 미국의 재균형 전략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국가 전략적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구한말 조선 왕조 내부는 친청파, 친일파, 친로파로 나뉘어 국론 분열을 거듭하다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번 사드 논란을 보면 구한말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같아서 매우 우려스럽다. 미국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 구한말 ‘사대주의’라는 용어가 또다시 등장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대주의’는 중국 중심의 조공적 패권질서로, 패권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그 후에도 우리 민족은 일본 중심의 제국적 패권질서,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적 패권질서,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적 패권질서를 경험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 민족은 항상 패권질서 아래서 생존과 번영을 추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위안스카이에 의해 대변되는 중국의 조공질서와 조선을 식민지화한 일본의 제국질서는 강압적인 ‘패도적(패道的) 패권’이었다. 이에 비해 미국 중심의 질서는 영토적 야욕이 없고 상대국과의 타협과 합의를 중시하는 ‘왕도적(王道的) 패권’이다. 6·25 전쟁 이후 체결된 한·미 동맹을 통해 대한민국은 미국의 ‘왕도적 패권질서’ 아래서 정치적 민주화와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다. 그렇다면 재균형 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미국과 적극 협력해 미국 중심의 ‘왕도적 패권질서’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아무런 근거 없는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 주장에 휘둘려 지금까지 한국 국가안보의 튼튼한 버팀목이었던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는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 정부는 안보 불안이 경제 회복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하루바삐 사드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고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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