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 논설위원

식당에서 설렁탕을 주문할 때 ‘특(特)’ 자가 붙으면 몇 천 원을 더 줘야 한다. 그리고 특수수사대, 특별검사, 특공대 등 ‘특’자가 붙으면 뭔가 특별한 권한과 위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완장(腕章) 문화’가 팽배한 사회 풍조 때문에 ‘보통’보다 ‘특별’이 좋아 보이고 힘센 것처럼 비친다.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일반 수석비서관들보다 특보(特補·특별보좌관)가 더 주목받는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해 들어 지지율이 떨어지고 소통 문제가 부각되자 정무, 민정, 안보, 홍보, 사회문화 특보를 신설했다. 소통을 강화하고 비서실 기능을 보완한다는 취지다. 이미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 특보제도가 시행되고 있고, 역대 정권마다 그런 제도를 운용했던 터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한 달에 500만 원 정도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그래도 국회 동의를 받을 필요도 없고, 청와대 예산으로 감당할 정도여서 생색내기 차원에서 임명해 왔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난 수석비서관회의 때 특보들을 옆자리에 배치하고 기존 수석들은 먼 곳에 앉혔다. 특히, 검찰총장 출신의 이명재 민정특보의 경우 검사장을 못 달았던 우병우 민정수석과는 20살 차이여서 법조계에서 보는 무게감이 다르다.

‘옥상옥’이라는 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27일 새누리당 주호영·윤상현·김재원 의원 등 현역 의원 3명을 정무특보로 위촉했다. 국회, 여당과 더 긴밀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3명의 현역 의원을 한꺼번에 특보로 둔 전례가 없고, 대통령제 아래서 삼권분립을 규정해 놓고 있는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 참가할 것이고 지시도 받아야 한다.

국회의원은 지역구 선거에서 투표로 뽑힌 헌법기관이다. 내각제적 요소를 담고 있기에 국회의원이 총리나 국무위원은 겸직할 수 있도록 국회법 제29조에 명시해 놓고 있지만 헌법학자들 사이에선 이것도 헌법에 규정된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위헌(違憲) 법률이라는 지적이 많다. 더구나 대통령의 참모조직인 비서실의 특보까지 현역 국회의원이 한다는 것은 행정 각부를 감시·견제하는 국회의원의 역할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국회의원이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이 될 경우 의원직을 사퇴하도록 하는 것은 이런 정신을 존중하기 위해서인데 특보는 예외로 하는 것이다.

법률적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내각에도 18명의 총리·장관 중 6명(2명은 인사청문회 예정)이, 청와대 정무특보도 3명이 현역 국회의원인 것은 권력을 과도하게 대통령에게 몰아줄 개연성이 높다. 연말이 되면 의원들은 무책임하게 대부분 내년 총선을 위해 선거판으로 돌아가 버리면 그만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당·정·청 어느 곳 하나 견제와 감시 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면 대형 재앙에 대한 사전 경보음이 울리지 않는다.

실효성도 의문이다. 내각과 청와대에 국회의원이 없어서 소통이 안 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대면(對面) 보고를 싫어하고 장관은 물론, 수석비서관들조차 잘 만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 여야 대표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 후임으로 이병기 신임 비서실장이 임명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청와대와 여야 간에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훈훈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비서실장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 실장은 박 대통령이 중동방문을 위해 출국하기 전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환송식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하고 공항에서 20여 분 동안 김무성 대표, 유 원내대표 등과 환담했다. 2일에는 여야를 직접 찾아 신임 인사와 함께 소통에 힘쓰겠다는 약속을 거듭했다. 실천을 봐야겠지만 이 실장의 자세는 전임 실장과는 사뭇 다르다.

관건은 박 대통령에 달려 있다. 자신은 바뀌지 않으면서 비서실장 바꾸고 특보를 수백 명 임명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신문만 잘 읽어도 특보들이 해줄 수 있는 조언들이 차고 넘친다. 서류 보는 시간을 줄이고 대신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시장 가서 많은 사람과 악수하고 한두 마디 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소통은 잘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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