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朴, 거부권 행사해야” “의원들이 ‘졸속’ 스스로 주장… 입법부의 존재를 부정한 것”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을 통과시킨 여야 의원들조차 ‘졸속’이란 자성이 나오면서 전문가들은 4일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민경욱 대변인을 통한 입장 발표를 통해 “국회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힌 가운데 민 대변인이 박 대통령의 의중을 듣고 전달한 것인지, 대변인 개인의 생각을 정리해 논평한 것인지를 놓고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박 대통령 중동 순방을 수행 중인 민 대변인은 전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공항 도착 직후 “여야 합의로 김영란법을 통과시킨 국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이 법의 제정이 우리 사회에서 부정청탁을 포함한 부정부패와 그동안의 적폐가 획기적으로 근절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조속한 통과 필요성을 강조했던 김영란법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상당 부분 변질된 데 대한 논란은 반영되지 않은 논평이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 스스로 ‘졸속이었다’고 주장한 것은 입법부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라며 “1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둘 거면서 왜 그렇게 빨리 입법을 서둘렀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입법 과정에 무리가 있었음을 인정한 만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전형적인 ‘눈치 보기식 과잉입법’인 데다 위헌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거부권 행사는 지난 2013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택시법)에 대해 재정 부담을 이유로 행사한 바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여야가 법 통과 직후부터 비판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국회가 국민 눈치를 봐야 할 데는 안 보고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법을 만들 데는 눈치를 본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국회의원들은 다음 선거와 표 걱정 때문에 여론에 밀려 김영란법을 통과시켰겠지만, 임기가 정해진 대통령은 그런 부담이 덜하다”며 “법 취지를 유지하면서 김영란법이 충분한 검토를 거칠 수 있게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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