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 처리를 위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던 중 얼마 전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있었던 한 새누리당 의원은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료 의원에게 “기자들도 한번 당해 보라 그래”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기자들에게 김영란법이 정말 문제가 많은 법인데 국민 여론을 감안하면 처리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고 토로하던 그였다. 이후 김영란법은 찬성 228·반대 4·기권 15표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김영란법이 국회에 머문 1년 8개월 동안 국회의원에게 위협이 되는 조항은 삭제되거나 많이 완화됐고, 대신 기자들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한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의원은 4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솔직히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은 ‘언론인들 손 좀 봐야 한다’는 적대적 감정이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김영란법은 비판 언론에 재갈 물리는 법”이라고 잘라 말하며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검찰과 경찰이 합법적으로 사찰하고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연스레 이완구 국무총리의 발언도 떠올랐다. 이 총리는 지명자 시절 기자들과 만나 “김영란법 지금까지 내가 공개적으로 막아줬는데 이번에 통과시켜버려야겠어…기자들도 한번 검찰 경찰에 불려다니고 해 봐야지”라고 말했었다.

2012년 처음 김영란법이 국회로 넘어왔을 때 애써 법안을 외면했던 국회의원들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그간 ‘김영란법을 뭉갰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마지못해 논의에 나섰다. “김영란법 원안(국민권익위원회 안)은 법도 아니다”며 법안에 칼질을 시작한 국회 정무위원회는 그 와중에 ‘부정부패 근절’을 위한 조항들은 흐릿하게 만드는 대신 느닷없이 언론을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위헌 요소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법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치권이 ‘개혁 여론’과 ‘총선 위기감’으로 포장된 이면에 ‘교묘한 언론 탄압 심리’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병기 정치부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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