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부당한 금품수수를 알고도 업무연관성을 입증 못해 처벌할 수 없었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발원(發源)된 ‘김영란법’이 전혀 엉뚱한 법으로 바뀌어 국회를 통과했다. 여야는 지도부 합의를 거쳐 3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 제정안을 압도적 찬성(찬성 228, 반대 4, 기권 15표)으로 가결했다. 법안 내용과 논의 과정은 제19대 국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번에 통과된 법은 김영란법도 아니다. 2011년 6월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보고한 안은 공직사회의 뇌물 청탁을 청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정부안을 거쳐 국회 심의과정에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됐다. 국회는 공직자에게 적용할 경우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세심히 살펴 보완했어야 하는데, 그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민간영역으로 확장했다. 정무위 속기록에 나오는 그 과정은 어이없을 정도다. 민간 부패도 당연히 처벌돼야 하지만,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행정권한을 가진 공직자와는 신분도 업무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처럼 법안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질된 것은 물론 법안 자체의 문제점도 너무 많아 죄형법정주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법률안의 기본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우선 위헌(違憲) 소지가 다분하다. 여야 지도부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야당 소속인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도 ‘위헌 소지가 수두룩한 졸렬 포퓰리즘 입법’이라며 본회의 표결에 불참했을 정도다. 공직과 민간 분야를 뭉뚱그려 같은 ‘공적 기준’으로 규율하는 문제는 물론 ‘공적 기능’을 가진 분야에 대한 규정도 무원칙하다. 차라리 공적 기능을 가진 분야를 다 넣든지, 아니면 국가 지원을 받는 기관으로 국한하는 등의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있어야 했다. 적용 대상이 넓어지면서 실효성도 의문스럽게 됐다. 처벌 대상 범죄가 애매해 법 적용에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하다. 자칫 언론 기능 위축이나 검찰의 남용 여지도 심각하다. 이런 와중에 국회의원 등 선출직들의 ‘청탁’은 합법화할 길을 열어놨다. 1년6개월 뒤 시행토록 함으로써 정작 ‘19대 국회’ 스스로는 법망에서 빠져나가는 꼼수를 발휘했다.

이제부터라도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 국회 스스로 재개정에 나서는 것이 최선이다. 차선은 박근혜 대통령이 위헌성 여부를 따져 재의(再議)를 요구하는 방안이다. 어떤 방법이든 잘못된 법은 시행되기 전에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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