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규 / 논설위원

영화 ‘선생 김봉두’는 2003년 3월 28일 개봉된 코미디물이다. 주인공 이름 ‘김봉두’는 ‘돈 봉투’를 암시한다. 그 돈은 어떤 돈일까? 작은 성의 곧, 촌지(寸志)인가 뇌물(賂物)인가…. 그 정답은 요즘 TV에 방영 중인 공익광고협의회의 ‘돌아볼 때 보입니다’ 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광고는 “내가 하는 부탁이 남이 보면 청탁일 수 있습니다” 하고 시작한다. 이어 ‘단합’이 ‘담합’이 되고, ‘정과 의리’가 ‘부정과 비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내가 하는 작은 선물도 남이 보면 뇌물로 보일 수 있다’는 충고도 빠지지 않는다. 바로 이 장면, ‘교실’로 설정돼 있는 이 대목에 김봉두 선생의 ‘봉투’를 대입하면 된다.

사전(辭典)상 촌지는 간단하다. 촌심(寸心) 또는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일 뿐이다. 그러니 촌의(寸意)나 촌정(寸情)과 비슷한 말이다. 또, 정성을 드러내기 위해 주는 돈, 흔히 선생이나 기자에게 주는 것도 촌지라고 한다. 1937년 12월 24일 자 동아일보 사설에도 ‘촌지조품(寸志粗品)’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촌지라는 말의 나이는 고희(古稀)를 넘본다. 예전에는 공직자나 정치인이 받으면 ‘떡값’, 업자가 특혜를 노리고 주는 것은 ‘뇌물’, 환경미화원에게는 ‘막걸리값’, 정화조 청소원에게는 ‘수고비’, 기자나 교사에게는 ‘촌지’로 통했다.

‘선물’ 이전에 ‘작은 뜻’이란 의미로는 그보다 훨씬 전에 중국에서 사용됐다. 중국 양(梁)나라의 2대 황제 태종(재위 549∼551) 간문제(簡文帝)의 글 ‘봉청상개강계(奉請上開講啓)’에도 나온다. 현대 일본어 사전도 작은 정성, 변변찮은 선물, 자기의 뜻 또는 선물을 겸손하게 가리키는 말로 풀이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촌지를 ‘작은 뜻’으로 순화하고 순화어만 쓸 것을 권한다.(국어순화자료집, 1992) 촌지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나 잘 봐 달라는 목적을 가지고 ‘뇌물’로 건네는 금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의미가 바뀌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 법안’ 이른바 ‘김영란법안’이 지난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공직사회 부패 방지를 위한 이 법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억지로 끼워넣어 위헌(違憲) 논란까지 나온다. 오늘의 일촌(一寸)은 3.03㎝로 보잘것없다. 하지만 이제 이 ‘일촌’을 벗어나면 촌지 아니라 척지(尺志) 또는 장지(丈志), 즉 ‘뇌물’로 처벌받는다.
황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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