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8시 제주 서귀포 대정읍에 벤츠, BMW 등 서울 강남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 외제 차들이 줄지어 몰려왔다. 이곳에 자리 잡은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블랭섬홀아시아 같은 해외 명문교의 제주 분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실어나르기 위한 등교 자가용이다. 코앞에 마라도가 있고 한가로운 해녀의 노랫가락만 들려오던 대정읍에 영어로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섞인 지는 4년쯤 됐다. 학생들의 절반가량은 서울·경기 수도권에서 유학 온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홍콩·싱가포르·중국 등 주변 국가 출신 유학생과 국내 거주 외국인의 자녀들이다. 우리나라 제주 유학생의 경우, 해외 유학보다 탈선의 여지가 적고 학비도 덜 드는 데다 기러기 부모의 외로움도 없어 인기가 높단다.
문화일보가 2월 23일부터 연재 중인 ‘지방 유학시대’의 이색 풍경은 제주뿐 아니라 인천 송도, 이공계 인재의 요람인 대전, 산업현장 연계형 실무인재를 기르는 영남권 등 전국 곳곳에서 관찰됐다. 대학은 물론이고 지방 신흥고를 찾아 떠난 고교생, 영재학교와 외국계 교육기관에서 초·중등 과정부터 세계 정상급의 교육환경을 체험하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된 것이다. 실제 삼성·LG 등 국내 대기업 계열사의 임원 중 자녀를 지방으로 유학 보낸 이들을 여럿 만난 경험이 있다.
일각에서 지방 명문교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 게 사실이다. 연간 수천만 원대의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가진 자’의 전유물이라는 거다. 교육 시스템에 계급적 편 가르기 칼집을 넣는 진보 진영의 전형적 논리다. 비슷한 비판이 미국 같은 선진국에도 남아 있다. 그러나 별 다섯 고급 호텔의 일류 종업원과 첨단시설만큼 받는 숙박비를 여인숙 수준으로 받으라고 강요할 순 없다. 1박 100만 원을 넘는 스위트룸과 1만 원의 게스트룸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 각자 형편에 맞춰 즐거운 여행 체험을 하면 된다. 교육은 지(知)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은 개인의 몫이다. 더욱이 21세기엔 호텔 체험 쿠폰(교육복지 제도)과 가상 호텔(TED 등 사이버학습)의 보완재도 잘 갖춰져 있다.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은 1990년대를 고비로 해외 유학생이 줄어들어 고민에 빠진 지 오래다. 유력설은 “유학 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주장이다. 이공계의 경우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명문교들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정체에 빠져 패기와 자신감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의 도전정신 부족을 탓하는 비관론이 병존한다. ‘배워서 성장하면 뭐하나’하고 넋이 빠진 청년은 누가 봐도 맥이 빠지긴 한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1913년 하와이로 망명 겸 유학을 떠났던 이승만 박사에 의해 건국됐다.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도 다수의 유턴 유학 인재들이 국민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메이지(明治)유신 때 이와쿠라(岩倉) 사절단을 유럽에 파견했던 일본은 우리보다 유학의 역사가 더 길다. 대국굴기의 중국은 유학파들이 요즘 들어 알리바바와 샤오미 같은 혁신 서비스를 선도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우리는 아직도 배울 게 많다. 해외든, 지방이든 장소가 문제가 아니지 않나. 글로컬의 시대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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