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현 / 숭실대 법과대 교수, 기업법률포럼 대표

헌법재판소는 지난 2일 신현규 전 토마토저축은행 회장과 채규철 전 도민저축은행 회장이 형법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죄(背任罪) 규정에 관해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합헌(合憲)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전원이 합헌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당분간 배임죄의 위헌성 논란은 소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으로 인해 모험적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지나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현행 배임죄 규정은 형법 제정 당시인 1953년부터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배임죄의 처벌 대상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단지 개인 사업자의 하수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들의 배임행위에 대한 입증이 쉬웠고 손해 사실도 분명했기 때문에 법 적용상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60년이 지난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수천, 수만의 주주들로부터 위임을 받은 대기업 CEO에 있어 무엇이 배임인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처벌받게 되는지 불분명하게 됐다. 특히, 복잡다단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모험적 투자를 해야 하는 경영자들에게 있어 배임죄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비수와도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박근혜정부가 주창한 창조경제 역시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문제는 현행 배임죄 조항이 안고 있는 2개의 치명적인 결함에 기인한다. 우선, 배임죄의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우리 형법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모두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1871년 세계 최초로 배임죄를 명문화한 독일의 경우 ‘법률 또는 관청의 위임, 법률 행위 혹은 신임 관계에 의해 부여된 타인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자’만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형법상 고의가 없어도 배임죄 성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1907년 배임죄를 규정한 일본은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반’한 경우, 즉 고의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

결국, 우리 배임죄 규정은 죄형법정주의의 핵심인 명확성의 원칙과 형법 제13조에서 정한 고의범 처벌 원칙에 반하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헌재는 대법원이 고의성을 판단할 때 경영상 판단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내리므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또한, 특경가법상 배임액이 50억 원을 넘는 경우 무기징역 등 가중 처벌하도록 한 것 역시 ‘재산범죄에서 이득액은 불법을 판단하는 핵심적 요소’라며 ‘이를 기준으로 한 단계적 가중처벌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만 언급했다. 1984년 특경가법 제정 당시 50억 원의 화폐 가치와 30년이 지난 현재의 화폐 가치를 동일하게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산범죄인 배임죄에 대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침해한 중범죄와 동일하게 엄중한 처벌을 가하는 것 역시 8명의 재판관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물론, 배임죄를 적용함에 있어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사법 당국이 피의자의 고의나 손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서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인 헌재가 재판부에는 폭넓은 재량을 허용하면서도 국민 기본권의 핵심인 죄형(罪刑)법정주의, 과잉 금지의 원칙을 수호함에 있어서는 매우 인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근본적으로 우리 형법과 특경가법상 존재하는 배임죄의 입법 목적이 정당한지, 그리고 그 처벌은 적절한지 등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가 다시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