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모방지 · 양모 효과는 의약외품
두피 청결 등 모발 건강은 화장품
탈모샴푸 등 기준 모호·관리 허술
韓 의약외품인 탄력 붕대의 경우
美선 의료기기·유럽에선 공산품
머리숱이 눈에 띄게 줄어 고민 중이던 직장인 C 씨는 병원을 찾는 대신 시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탈모방지 샴푸를 선택했다. 광고 문구를 보니 샴푸만 사용하면 앞으로 탈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탈모방지 샴푸는 ‘의약외품’이라는 마크가 붙어있어 C 씨에게 신뢰감을 높여줬다. 하지만 최근 우연히 만난 의사로부터 탈모방지 샴푸는 탈모치료에 거의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평소 입안 치석으로 고민하던 직장인 K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치석 제거 효과가 확실하다는 치약을 사서 오랜 기간 사용했지만, 여전히 입안 구석구석에 치석이 남아 불쾌감을 줬기 때문이다. 결국 K 씨는 치과를 찾았지만 치석 제거가 늦어 이미 치주염이 나타나고 있었다. K 씨가 해당 치약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의약외품’으로 표기돼 믿었기 때문이다.
‘의약외품’은 인체에 대한 작용이 가벼운 의약품을 의미한다.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쓰는 의약품보다는 인체에 대한 작용이 가벼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따로 정한 분류 기준에 의한 약품을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의약외품에 대한 분류체계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탓에 무분별하게 사용되거나, 사용상 주의가 필요한 제품들도 의약외품이 아닌 공산품으로 분류되면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호한 ‘의약외품’ 분류 = 대표적인 사례가 탈모방지 샴푸다. 현재 식약처는 모발용 제품 중 탈모방지 및 양모 효과를 표방하는 제품은 ‘의약외품’으로, 발모촉진 등 탈모치료를 표방하는 제품은 ‘의약품’으로, 두피 청결 등 모발 건강에 도움을 주는 제품은 화장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품이 탈모를 치료하는 의약품처럼 홍보되고 있다. 의약외품인 탈모방지 샴푸 중에는 탈모 진행이 멈춘다거나,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처럼 마치 ‘의약외품’을 ‘의약품’처럼 홍보하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일반인들이 의약품과 의약외품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의학적 효능을 표방한 제품일 뿐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양한 탈모 유형 중 약 70~80%를 차지하는 남성형 탈모증은 유전 및 남성호르몬의 변환물질(DHT)에 의해 발생하는데, 현재 임상적으로 검증된 치료제로 DHT를 억제하지 않는 이상, 샴푸 등으로 남성형 탈모를 사전에 예방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2011년 급성 호흡 기능 상실로 임산부 환자를 잇따라 사망하게 한 ‘가습기 세정제’는 ‘의약외품’으로 분류되지 않아 문제가 된 경우다. 현재는 의약외품으로 분류됐지만, 사고 당시에는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돼 식품위생법이나 약사법이 아닌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른 일반적인 안전기준만이 적용됐다. 즉 제품에 포함된 성분이 호흡기로 흡입될 때 발생하는 독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망사고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외에도 현재 의약외품으로 분류된 탄력붕대도 기준이 모호하다. 미국에서는 의료기기로 분류됐지만, 유럽에서는 공산품으로 분류됐다. 또 염색약도 국내에서는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화장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 허술한 유효성·안전성 평가 기준 = 의약외품으로 허가받기 위해서는 안전성·유효성 검사가 필요하고 이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상황이다. 식약처는 탈모방지샴푸의 경우 효력 평가 시험법(가이드라인)으로 연구 기간, 대상, 평가 등 구체적인 사항을 안내하고 있지만, 이는 기업이 처음 임상을 진행할 때 팁을 얻을 수 있는 단순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유효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임상시험을 했다고 해도 신뢰도를 얻기 어려운 수준이다. 실제 현재 임상효능을 내세워 판매되는 탈모방지 샴푸 중에는 임상시험 참여자 수가 20명에 불과한 제품도 있다.
최근 안전성 논란으로 식품과 화장품 등에서 점차 퇴출되고 있는 ‘파라벤’ 계열의 방부제에 대한 기준도 제각각이다. 어린이용 치약의 파라벤 허용기준치가 구강티슈 등 같은 용도의 다른 제품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김용익(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구강 티슈의 파라벤 허용 기준치가 0.01% 이하인데 반해 어린이용 치약의 파라벤 허용기준치는 0.2% 이하로 20배나 차이가 난다. 구강 티슈의 경우 2011년 의약외품으로 지정된 이후 2013년 3월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보존제 허용 범위를 먹는 ‘내용제’ 수준인 0.01%로 낮추었지만, 어린이용 치약을 포함한 치약류는 ‘외용제’로 1995년 이후 줄곧 같은 기준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경우 치약 사용 후 뱉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의약외품에 대한 인식이 낮다 보니, 일반 공산품이 의약외품으로 둔갑해 판매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해 수요가 늘어난 마스크가 대표적이다.
현재 식약처는 방진기능이 있는 ‘황사방지용’과 ‘방역용’을 의약외품인 보건용 마스크로 통합하고, 방진 기능이 없는 기존 보건용 마스크는 ‘공산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등에서는 황사 마스크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일반 보건용 마스크가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다. 의약외품에 분류 체계를 재정립하고 기존에 분류된 제품에 안전성과 유효성 등의 효과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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