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가 돌아간 지 20분쯤 지났을 때 서동수는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으로 떠는 것을 보았다. 휴대폰을 든 서동수는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나오미한테서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 뵐 수 있어요?”

한동안 문자를 내려다보던 서동수가 곧 한글을 찍었다.

“10시쯤 비서가 모시러 갈 테니까 준비하고 있도록.”

경호원이자 수행비서인 최성갑은 서동수의 그림자나 같다. 나오미는 서동수한테만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그날 밤, 10시 30분이 되었을 때 나오미가 관저 2층의 응접실로 들어섰다. 관저는 주택가 위쪽의 한적한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2층 저택 본관에 경호동과 부속 건물까지 3개 동이다.

“이렇게 만나면서 체면 차릴 건 없겠지.”

서동수가 탁자에 차려놓은 술과 안주를 눈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그럼요.”

따라 웃은 나오미도 진한 자주색 패딩 코트를 벗자 선홍빛 원피스가 드러났다. 소파에 앉은 서동수가 나오미의 잔에 위스키를 따르면서 물었다.

“극비 정보라도 있는 거야?”

“대마도 카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술잔을 든 나오미가 서동수를 보았다.

“그래서 장관께 그런 부탁을 드리라고 하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빙긋 웃었다.

“날 밤에 만나서 내 속셈을 알아내라고는 하지 않았어?”

“일본 정부도 저를 신임하지는 않아요.”

서동수와 시선을 부딪친 나오미가 입술 끝을 올리며 웃었다.

“한국 측도 같겠지요.”

“무슨 말이야?”

“저는 한국과 일본에 절반씩 나눠진 몸이니까요.”

“딱 절반이 되기는 힘들지.”

그러자 나오미가 머리를 끄덕였다.

“절 믿지 않으시죠?”

“나오미 씨는 본래부터 그런 역할이야. 양쪽에서 다 예상하고 있었던 거야.”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나오미의 몸은 정직했지. 아름다웠고.”

“대마도가 끝까지 갈까요?”

나오미가 알고 싶었던 것이 이것인 것 같다.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서동수가 지그시 나오미를 보았다. 나오미의 조상은 백제시대에 대마도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 대마도가 한국땅이라는 산 증거가 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나오미의 할아버지가 묻혀 있다고 했던가?

“일본이 계산을 잘못했어.”

빈 잔에 술을 따르면서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종전 후 70년간 일본은 너무 순탄하게 지나는 바람에 역경에 대한 반응력이 떨어진 것 같아. 미국한테 너무 의존해서 그런가?”

“…….”

“반면에 남북한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온갖 곡절을 다 겪고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국으로부터도 수모와 시련을 겪었지. 그래서 단련이 된 것 같아. 상처투성이의 싸움꾼이 된 것이지.”

다시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서동수가 입을 벌리고 더운 김을 품었다.

“반응력이 빨라. 남북한이 원수로 지내다가 신의주를 만들고 위기에 재빨리 연합해서 대마도로 달려드는 것. 이제 한민족의 본색이 드러나는 것이지.”

“모두 장관님이 각본을 쓰신 것 아녜요?”

“천만에.”

서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내 조국, 이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만든 거야.”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