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 역명 병기 불허 원칙에 봉은사로 최종 역명 결론
이달말 개통…기독교계 반발… 親 불교 朴 시장 입김 의구심
주민들 “지명 익숙 문제없어”… 상인들 “코엑스 빠져 아쉬워”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이 들어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지하철역 공사현장에서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3월 말 개통을 앞둔 이 역의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정작 이 역의 이름을 둘러싼 갈등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서울시는 이 역의 이름을 ‘봉은사’로 확정 고시했지만, 기독교 단체에서 ‘종교 편향’을 주장하며 시에 가처분신청 제기 방침을 밝히는 등 종교 간 갈등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역명 제정 행정 절차 문제 없었나 = 11일 서울시 및 강남구청 등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1월 역명 제정 계획이 수립된 이후 지난해 3월 강남구는 1차로 강남구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2차로 강남구청 홈페이지를 통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의견을 수렴했다. 이후 강남구 지명위원회는 관련 절차에 따라 역명을 심의한 뒤 1안으로 ‘봉은사(코엑스)’, 2안으로 ‘코엑스(봉은사)’로 확정했고, 이 같은 안을 서울시에 보냈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 1차 서울시 지명위원회를 개최하고, 강남구 안을 올렸다. 그러나 지명위는 강남구에서 올린 1·2안을 모두 부결시키고, 봉은사가 역명으로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역명 병기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고, 인근 삼성역에 코엑스를 뜻하는 ‘무역센터’를 병기하고 있는 만큼 봉은사역에 코엑스를 또 병기할 필요는 없다는 이유였다. 더욱이 서울시의 ‘역명 제·개정 절차 및 기준’에 따르면, 해당지역과 연관성이 뚜렷하고 지역실정에 부합하는 옛지명, 법정 동명 등이 없을 경우 ‘역사에 인접하고 있는 고적, 사적 등 문화재 명칭’ 등으로 역명을 선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지명위는 봉은사가 건립된 지 1200년이 넘는 등 봉은사를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닌 문화재로 판단해 역명을 봉은사로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강남구는 역명 봉은사에 코엑스를 병기해 달라고 서울시에 재차 요청했지만, 같은 이유로 지명위는 이 안건을 위원회에 상정하지 않았다. 이후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이 역을 ‘봉은사’로 확정 고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지명위원회 조례’ ‘역명 제·개정 절차 및 기준’에 따라 역명이 결정된 것으로 절차상 하자가 전혀 없다”며 “당시 이해관계자였던 코엑스 측에도 설명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역명 결정 당시 코엑스로 역명 변경 주장을 했던 코엑스 측뿐 아니라, 향후 종교 간 갈등이 있을 수 있는 점을 감안해 개신교 측으로부터도 선제적으로 입장을 들었다면 갈등 소지를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독교계 반발 심화 = ‘봉은사’로 역명이 고시되고,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개신교 단체들은 반발했다. 개신교 단체들은 “뒤늦게 서울시의 결정을 알게 됐다”며 “역명을 절 이름으로 정하는 것은 공정성, 객관성이 결여된 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강남구에서 실시한 역명 선정 여론조사가 전문 조사업체가 한 것이 아니어서 전문성이 없다며 역 이름을 봉은사로 정한 것을 백지화하거나 코엑스를 병기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개신교 단체는 또 “친(親)불교 성향의 박원순 시장이 개입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박 시장은 취임 전 봉은사의 미래위원장(2007∼2010년)을 지낸 바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강남구교구협의회는 서울시의 결정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제기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병대 한국교회언론회 사무총장은 “여론조사 과정에 불교계가 개입하고, 박원순 시장의 친불교적 성향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불교계는 개신교 측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가 정한 규정에 따라 합법 절차를 거쳐 결정된 역명을 백지화하려는 개신교 측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불교계는 봉은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닌, 서울과 강남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이미 자리잡은 만큼, 상식적으로 봐도 역명 지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영란 봉은사 홍보실장은 “한국 대표 문화재로 자리매김한 봉은사를 굳이 종교적 대립관계를 만들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며 “정해진 역명에 대해 뒤늦게 논란을 제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엑스 상인들 “아쉽다” vs 주민들 “크게 상관없다” = 역명이 ‘봉은사’로 정해지자 코엑스 상인들이나 직장인들은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코엑스에 입점한 한 불고기 전문점 관계자는 “코엑스역으로 이름을 지으면 코엑스가 강남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봉은사로 정해져 아쉽다”고 말했다.
아셈타워 내 직장을 다니는 정모(42) 씨는 “코엑스는 외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인 만큼 그들의 편의를 위해 발음이 좀 더 쉬운 코엑스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며 “봉은사역은 글로벌 도시인 ‘강남’과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봉은사역 인근 주민들은 봉은사역 표기에 대해 대체로 반감이 덜했다. 강남구 삼성동에 거주하는 안모(여·31) 씨는 “종교적인 색채를 떠나서 봉은사는 이미 지역 고유 이름으로 정착돼 있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동에 거주하는 김모(25) 씨도 “코엑스역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옆에 있는 시설이 봉은사인 만큼 역 이름으로 정해도 큰 상관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봉은사·코엑스 병기는 대안이 될 수 없나 = 일각에서는 종교 간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서울시가 역 이름 병기를 고려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가 정한 봉은사에 ‘(코엑스)’를 병기해 개신교 단체 주장을 일부라도 받아들이면 종교 간 갈등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재심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봉은사로 역명을 정하는 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재심의를 받아들일 합당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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