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다우트’에서 원칙을 중시하는 엘로이셔스 수녀 역을 맡은 박정수가 지난 9일 대학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대본을 들고 연습 중이다.
연극 ‘다우트’서 원장 수녀역 고통스럽지만 묘한 매력 있어 젊은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어 “난 화끈한 성격 도전정신 강해”
“TV에선 지적받아 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자꾸 대사 꼬이고, 동선 틀리고…. 그러다가 욱하고 말아. 나 자신한테 화가 나요. 스스로 시험하기 위해 무대에 섰나 봐요. 그동안 얼마나 형편없이 연기했는지 증명하려는 듯.”
1972년 MBC 공채 탤런트 5기로 데뷔한 배우 박정수(62)가 43년 만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 오는 26일부터 4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대학로예술극장에서 선보이는 ‘다우트’(원작 존 페트릭 쉔리, 연출 최용훈). 2006년 극단 실험극장(대표 이한승)이 배우 김혜자를 내세워 초연한 후, 8년 만의 앙코르 공연이다.
엘로이셔스 수녀(박정수·왼쪽)와 대립 구도를 만드는 플린 신부(서태화·오른쪽).
개막까지 이제 보름. 9일, 서울 명륜동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에서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박정수를 만났다. 편안한 청바지 차림에 스웨터, 다운 조끼까지 입은 그녀는 “연습실이 너무 춥다”고 했다. 이어, “극단 대표가 4000원 넘는 밥도 못 시키게 한다”는 원성까지. 이번 공연 개런티는 아마 그녀의 드라마 한 회 출연료도 넘기지 못할 터. ‘배고픈’ 동네에 나타난 ‘TV 스타’의 속내가 궁금했다. “진짜 궁금해서 그래, 이 연극. 훌륭한 작품으로 유명한데, 원작자가 만든 영화(다우트, 2009)는 개인적으로 정말 지루했거든요(웃음). 그래서 내가 연기해 보고 싶었어요. 난 도전 정신, 그리고 호기심도 많은 편이거든.”
첫 연극이지만 주연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엘로이셔스 수녀 역. 2006년에는 김혜자가, 영화에서는 메릴 스트리프가 연기한 배역이다.
이날 제임스 수녀(문수아 분)와의 대화가 20여 분 이어지는 제2장에서 박정수는 여러 차례 흐름을 끊는 ‘주범’이 됐다. “아, 또 여기서 틀려. 아주 환장하겠네!” “여기 말이야. 그냥 부드럽게 움직이면 안 될까?” “아, 좀 봐줘∼.” 40년 연기 내공. 2시간 분량의 대본을 외우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낯선 동선 처리가 ‘치명적 약점’이다. 동선을 헤매면, 대사도 꼬인다. 박정수는 “연극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는 TV 속 표정 연기와도 같다. 여기선 한 발짝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철저히 계산된 동선. 이를 다시 물 흐르듯 연결시키는 게 관건. 그녀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연출자에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이 될 거야’라고 투정을 부린다”고 했다. 하지만 후배들에겐 적극 권한다. “젊은 배우들에게 한번은 꼭 해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아주 매력적인 장르예요.”
엘로이셔스 원장 수녀는 박정수의 이지적인 평소 이미지와 흡사한 캐릭터다. 그녀 역시 “단호하고 차가운 분위기 때문에 캐스팅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연습에 임하는 그녀의 모습은 차갑기보다 화끈함에 가까워 보였다. ‘틀렸다’는 지적을 받으면 반드시 “왜?”냐고 묻고, 이유를 수긍해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러다 대사가 틀리면 딸뻘 되는 배우에게도 “미안!”이라고 크게 사과한다. 자꾸 대사를 잊어버리는 장면에서 도움을 준 상대 배우에겐 “아유∼ 예뻐라!”라며 ‘엄마 미소’를 보여줘 연습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내가 좀 강해요. 강하면 부러지지. 배우니까 이만큼 사회생활을 하지, 회사에 다녔다면 상사한테 매일 덤벼서 얼마 못 다녔을 거예요.”
엘로이셔스처럼 단정하지만 차가운 외모. 하지만 따뜻하고 화통한 성격은 가려지지 않는 것일까. 박정수는 최근 한 조사에서 ‘중년 남성이 가장 데이트하고 싶은 여자 연예인’ 1위를 차지했다. “당혹스럽고 쑥스러웠어요. 그래도 1등은 신나잖아? 젊은 애들까지 ‘눌렀’다고 하니 기분 좋은 일이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