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야구장에 가면, 여성은 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남성은 이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면서 데이트가 달짝지근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축구장에서 여성이 뭔가 물어보면 남성은 “가만있어 봐” 하며 경기 집중에 방해하지 말라고 손사래 친다. 프로야구에 여성 관중이 느는 데 비해 왜 축구는 그렇지 못한지, 프로축구 쪽에서 들은 얘기다. 우스개지만 축구와 야구의 경기 시간 운용과 관중 집중도의 차이를 잘 말해준다. 9회에 걸쳐 공수교대를 하는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야구는 이처럼 남녀 간 연애뿐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의 생리에 맞는 프로스포츠다. 공수 교대 때마다 TV 광고를 할 수 있어서다. 미국에서 프로축구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가 TV 광고를 전·후반 사이 한 번밖에 할 수 없어서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여유 있는 경기 시간 운용이 프로야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늘어지는 경기 시간이 지루함을 못 참는 젊은이들을 프로야구로 끌어들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지난 시즌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2분이었다. 매일 여가에 들이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다. 젊은 팬의 유입이 줄면서, 메이저리그(MLB)는 가장 큰 수입원인 TV 중계권료에서 미식축구는 물론 이미 프로농구에도 뒤졌다. MLB사무국이 간단없이 스피드업을 강조하는 이유다. 올 시즌 시범경기부터 적용하고 있는 MLB의 새 스피드업 규정을 보면, 모든 건 TV 중계에 맞추어진다. 공수 교대는 TV 광고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 타자는 적어도 한 발을 타석에 걸치며 타석을 떠나선 안 된다. 아니면 심판에게 스트라이크 하나를 받는다.
일본의 지난 시즌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17분, 한국은 3시간27분이나 걸렸다. 시간상 미국을 기준으로 9회 경기라면, 우리는 10회 이상을 한 셈이다. 스피드업이 정말 절실한 곳은 한국 프로야구였다. 우리도 시범경기부터 타자가 타석에서 두 발을 모두 빼면 스트라이크를 먹는 스피드업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MLB의 규정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고, 지난해 일찌감치 공표해 구단들도 준비해왔다.
올 시범경기에 똑같이 스피드업을 적용하고 있지만, 미국과 한국은 큰 차이가 난다. 미국은 비교적 조용하다. 불만이 없진 않지만, 감독이나 선수가 일단 MLB사무국이 오래 준비한 ‘플랜’을 믿고 새 규정에 적응해보자는 태도가 읽힌다. 반면 한국은 벌써 난리가 났다. 감독과 선수들이 너나없이 스피드업 룰을 고치라고 아우성이다. ‘야구가 재미없어졌다’부터 ‘승부처에서 맥이 끊길 수 있다’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다.
야구의 미래를 위해 스피드업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지도자나 선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최소한 내가 있는 동안만큼은 ‘리스크’를 감수할 수 없다는 건, 변화를 거부하는 성향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2010년에 투수가 12초 이내 투구해야 하는 ‘12초 룰’이 만들어졌을 때도 논란이 극심했다. 그러나 그해 경기 시간은 10분이나 단축됐고, 12초 룰은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발전적인 변화도 처음엔 대개 불편하기 마련이다.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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