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두 / 연세대 일반대학원 교수·유럽지역학

‘반성(反省)은 생산적이다.’ 독일은 나치의 죄악에 대해 고개 숙이고 참회함으로써 국제사회를 감동시키고 신망과 지지를 얻었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은 패전을 ‘해방의 날’이라고 정의했다. 독일 국민이 히틀러의 독재와 전쟁의 광란에서 해방됐고, 이웃에 더는 반인륜적 행위를 하지 않게 된 기쁜 날이라는 것이다. 그는 “독일의 존재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함으로써 다시는 침략적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는 데 있다고 말했다. 과거사 반성이 국가 브랜드가 된 독일은 많은 것을 얻었다.

첫째, 유럽 통합에 성공했다. 두 차례의 전쟁으로 유럽의 강자가 되는 데 실패했던 독일은 유럽 통합으로 그 꿈을 달성한 것이다. 유럽 통합을 이룩하기 위해 독일은 특히 프랑스와의 화해 협력을 모색했고,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으로 프랑스와 관계 개선을 이뤄냈다.

둘째, 동방정책(東方政策)에 성공했다. 동방정책은 서독 외교정책의 혁명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획기적인 정책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독일이 끊임없이 추구했던 화해와 협력의 국가 정체성 때문이었다. 동유럽과의 화해 협력을 모색한 동방정책은 서유럽과의 화해 협력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럽 통합의 정신이 동쪽으로 확장된 것이 동방정책인 것이다. 그리고 화해와 협력은 독일에서 초당적으로 공유하는 정체성이었기 때문에 당시 야당이었던 기민당도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셋째, 독일 통일에 성공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노골적으로 독일 통일에 반대했다. 옛 소련의 위협에 함께 대처했고, 경제 통합을 함께 이룩한 동맹국이었지만, 독일의 침략 과거를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통일을 승인했던 것은 전후 독일이 정체성의 정치를 통해 주변국에 독일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은 통일 후에도 이웃 국가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진정성 있는 과거사 반성을 계속하고 있다.

히틀러는 일본인을 명예 아리안족이라고 추켜세웠지만,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8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1954년 동년배 전후 세대인 아베 신조 총리에게 역사적 과오에 대한 영구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일침을 가했다. 메르켈의 견해에 따르면, 과거는 일거에 청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시각과 증거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는 법적으로 종결됐다”는 일본의 주장은 부끄러운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을 보여준다.

일본이 종전 50주년에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를 재검토하고 있다. 오는 8월에 발표할 70주년 담화에서는 이른바 ‘자학 사관’에서 벗어나 전후의 일본이 국제 평화에 기여한 몫을 강조하려고 한다. 말을 바꾼다는 것은 그동안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의미한다. 아베가 일본의 역사관을 뒤집으려는 것은 독일 총리가 유대인 게토 기념비에서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 총리의 행동이 과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거에 대한 사과와 용서는 한·중·일 외교 관계를 결정하는 폭발적인 요인이다. 2012년 아베 취임 후 동북아 삼국지는 갈등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외교정책에서는 독일과 같은 정체성의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아베가 8월에 발표할 담화문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메르켈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겨 한·일 양국이 어떠한 가치를 공유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담화를 발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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