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주식회사 / 피터 도베르뉴·제네비브 르바론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환경보호단체인 시에라 클럽은 2008년부터 2년간 세제업체인 클로록스사의 홍보를 도왔다. 이 회사가 만든 천연세제 ‘그린웍스’에 자신들의 로고를 박을 수 있도록 허가했고, 대가로 판매액의 1%를 챙겼다. 미 가스산업계로부터는 2007∼2010년 2500만 달러의 후원금을 받았다. 120여 년의 전통을 지닌 환경단체가 환경파괴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기업들에게 활동자금을 지원받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KFC는 2010년 수잔 코멘 유방암 재단과 함께 ‘유방암 치료를 위한 치킨’을 출시했다. 암 연구 기금을 모은다는 목적이었지만 비만은 유방암의 위험 요인이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패스트푸드를 많이 팔아 암을 치료한다는 논리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제약업체와 환자단체의 밀월 관계는 더 하다. 미국정신건강협회의 경우 2009년 수입 320만 달러 중 4분의 3 이상이 제약회사로부터 들어온 돈이었다.
저자 피터 도베르뉴(국제관계학) 캐나다 브리니시컬럼비아대 교수와 제네비브 르바론(정치학) 영국 셰필드대 선임연구원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지를 기반으로 했던 비영리단체가 점차 효율성과 실용주의를 앞세운 거대조직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새 해법을 찾으려 했던 ‘저항’ 세력에 ‘저항주식회사’라는 새 이름을 붙여준다. 자본주의에 순응하고, 스스로 기업이 되어가는 시민사회운동을 한 단어로 꼬집은 것이다.
시장경제의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 시민사회운동은 기업의 원리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덩치 불리기는 전형적인 기업의 속성이지만 오늘날의 비영리 기구는 다르지 않다. 그린피스는 재정 후원자가 300만 명에 달하고, 전 세계 40여 개국에 지부가 있다. 2011년 그린피스의 소득은 6000만 유로(750억 원)를 웃돌았고 상임이사의 연봉은 11만5000유로(1억5000만 원) 수준이었다. 세계자연기금 네트워크는 2012년 무려 1조2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같은 해 모금활동을 벌이는 데만 1800억 원을 썼다. 국제앰네스티도 전 세계 80여 개국에 사무실을 두고 해마다 3400억 원의 돈을 유치한다.
문제는 많은 비영리 기구들이 자신들의 규모를 키우는 데 기업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점. 직접적인 후원금은 물론, 제휴를 맺어 공동 캠페인을 벌인다. 세계자연기금은 코카콜라·피앤지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국제자연보호협회는 보잉·브리티시페트롤리움·셸·월마트 등 대기업과 동반자 관계를 맺는다. 비영리 기구는 기업의 광고처럼 모금활동에 연예인 등 유명인사를 내세우는 방식을 활용하는 한편,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마케팅업체도 고용한다.
물론 이런 기업화가 역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과 동반자 관계를 맺으면 지배적 정치·경제제도 내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재정을 확보해 더 많은 활동을 운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 정해놓은 울타리 안에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세계 질서를 바꾼다는 생각은 애당초 접어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지적이다.
책은 국가가 안보와 안전을 내세워 시민사회운동을 뭉개는 현실이 ‘저항 주식회사’를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9·11 테러 이후 국가들은 반자본주의 운동 집단과 시위를 테러리즘의 잠재적 발원으로 여기고 있다. 활동가와 시위를 관리하기 위한 감시 시스템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일반경찰이 군대식 장비를 늘린다. 저자들은 “운동의 기업화 경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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