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서글서글한 눈매에 부드러운 표정을 지니고 있지만 헌재 재직 시절 ‘Mr. 소수의견’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서 소수 의견을 많이 냈다. 지금은 위헌 결정이 난 간통죄에 대해 2001년, 2002년 헌재가 각각 8대 1, 7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렸을 당시 권 전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고수했다. 2005년 호주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때에는 합헌 의견을 냈다. 같은 해 헌재가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을 위한 연기·공주 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대해 7대 2로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에도 위헌 의견을 냈다. 이 같은 소수 의견은 당시 분위기에서 상당한 비판을 불러일으킬 것이 예상됐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이런 소신 행보는 12·12 및 5·18사건 항소심에서 이미 예견됐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이던 1996년 12·12와 5·18사건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 사형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항장불살(降將不殺·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않는다)’이라는 고사성어를 빌려 무기징역으로 감형해 진보세력의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비록 보수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지만 재판에서는 자신의 이념적 성향보다 법과 상식을 우선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권리라는 ‘신원권(伸寃權)’을 도입해 배상판결을 내린 것이나 간통죄에 대해 위헌 의견을 낸 것이 한 예다.
권 전 재판관은 1967년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됐고 2000년 헌법재판관에 취임하기까지 30여 년간 법원에 몸담으면서 법원행정처 수석사법정책연구심의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08년 4월 언론중재위원장에 취임한 권 전 재판관은 2011년 임기 3년의 위원장직에 유임됐고, 임기 만료를 두 달 앞둔 지난해 1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사건의 정부 측 대리인으로 참여하면서 사임했다. 2008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초대 원장을 지냈고, 2010년 말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을 맡아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1941년 충남 연기 출생 △경기고·서울대 법대 △1967년 8회 사법시험 합격 △2007년 한국법률문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