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태 / 前 재향군인회 특임부회장, 前 서울시재향군인회장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 대원이 한국에 입국했다고 가정해 보자. 국가정보원은 이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예의 감시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 은밀하게 접촉하는 사람들을 조사할 수는 없다. 이들의 금융 거래 내용을 조사할 수도 없다. 이것은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이 당면한 현실이다.

2009년 이후 5년 동안 국내에서 국제 테러 조직과 연계돼 추방된 외국인은 60여 명이다. 이 가운데는 알카에다, 헤즈볼라 등 극단적 테러 단체 요원도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 김모 군이 IS에 가담한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IS 테러 요원이 국내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문제는 1명의 테러리스트가 1명만 타격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들의 막가파식 테러는 단 한 건의 테러로 수백 명, 수천 명의 생명이 희생될 수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그런데도 수십 명의 테러리스트가 국내를 드나들고, 국제적으로 테러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감시하고, 수사할 법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테러에 너무 무감각하거나, 테러방지법 제정을 미루고 있는 국회의 ‘직무유기’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은 참으로 불행한 사건이지만, 2001년 이래 잠자고 있는 테러방지법을 흔들어 깨운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도대체 국민의 생존에 우선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경제·인권·명예·표현의 자유 등이 수천 명의 생명을 테러로부터 보호하는 것보다 우선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보다 민주주의 역사가 훨씬 깊고, 우리보다 선진 인권 의식을 가진 외국에서도 테러에 관한 법은 엄중하고 가혹하다.

미국에는 이른바 ‘애국법’이 있다. 정식 명칭은 ‘테러 대책법(Anti - terrorism legislation)’이다. 이 애국법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도 정치·종교 등 결사단체의 시설을 감시하고 수사할 수 있다. 테러 용의자를 숨겨주거나 신고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처벌한다. 돈세탁이나 자산관리 편의를 제공하면 모든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 영국은 ‘반(反)테러법(Terrorism Act 2000)’을 갖고 있다. 반테러법에는 불고지죄, 테러 용의자 재산 몰수, 영장 없는 체포·구금 등을 명문화했다. 또 프랑스는 ‘테러 자금과 국가안보에 관한 법’을 마련했고, 캐나다도 9·11 테러 이후 즉각 반테러법을 제정했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자국의 국민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초법적인 법률을 갖고 있고 국민도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공식적으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던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서 첨단 산업시설을 지켜야 하고, 동시에 4강의 틈바구니에서 수시로 안보를 위협받고 있는 대한민국, 지구촌의 여러 나라와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면서, 잠재적으로 저들의 테러 위협에 노출된 대한민국에만 테러방지법이 없다.

15년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인권을 침해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정치적으로 오·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모두 소중하지만, 생존에 우선할 수는 없다.

정치적 남용 우려에서도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테러방지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정치권에서 테러방지법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국민의 생존을 지키자는 데 정파가 따로 있고,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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